경주 곳곳 비석·신사 남아, 명확한 처리 방안없이 방치
오늘로 광복 67주년을 맞았지만, 신라 천년 고도 경주 곳곳에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어놓으려고 휘두른 잔혹한 '풍수(風水)침략'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렇지만 문화재청과 경주시 등 관계기관은 일제의 수탈현장을 대책 없이 그대로 방치해 놓았고 시민들조차 무관심한 모습이다. 관련기사 3면
일제는 보문관광단지 뒤편의 명활산성의 지세(地勢)를 끊기 위해 조선총독부 명의의 비석(고적비) 2개를 세웠는데, 비석 1개는 그 자리에 서 있으나 또 다른 1개는 공사장 인부에 의해 뽑혀 길가에 방치돼 있다. 정토암 일성 스님은 "산성 중턱에 가면 조선총독부가 세운 비석이 땅에 널브러져 있는데, 마을 사람들조차 돌덩이인지 비석인지 모르고 있다. 안내판을 달아 현장을 보존하든지, 다른 공간에 비석을 보관하고 이곳은 원상복구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비석 처리 문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변만 내놓은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일제는 현재 시외버스터미널~건천읍에 자리한 무열왕릉과 그의 둘째 아들 김인문 묘 사이에 도로를 냈는가 하면 풍수지리를 따져 안압지 뒤편과 김유신 장군릉 아래에 철로를 놓았다. 경주를 찾은 스웨덴 왕세자를 위해 그 나라 이름을 따 왕릉 이름을 서봉총(瑞鳳塚)으로 멋대로 짓는 만행을 저질러 놓았으나, 아직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쓰고 있다. 일제가 경주읍성 남문 맞은편에 지어놓은 일본 신사(서경사'西慶寺)도 현재까지 남아있다.
경주시 측은 " '일제침략의 현장도 역사다' '침략현장은 청산해야 할 과거다'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어 적극적인 조치를 못하고 있다"며 "경주 곳곳에 도로나 철도를 놓아 민족정기를 끊으려 한 일제의 만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밝혔다.
김기조 경주문화원장은 "중앙청 철거 후에 아쉬워하는 의견이 있었던 것처럼 철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일제강점기도 우리 역사의 일부분인 만큼 감정에 이끌려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현재보다 좀 더 명확한 보존 및 처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보존정책과 관계자는 "일제의 풍수침략 현장을 복원하기에 앞서 완벽한 복원이 가능할지가 걱정이다. 경주시 입장에서도 예산이나 고증자료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주읍성의 중심부였던 동부동 구 박물관에 일본 황족에 의해 심어진 100년생 구상나무(일본전나무) 2그루의 철거문제를 두고 논란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김윤근 신라동인회 회장은 "일제가 민족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경주에 '풍수침략'을 집중했는데 일본을 상징하는 구상나무를 심은 것도 그 일환"이라며 "풍수설을 보면 용마루보다 높은 나무가 있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상나무가 100년 넘은 살아있는 문화재라며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박승혁기자 psh@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