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서울 생활과 대구 생활

입력 2012-08-15 10:49:43

얼마 전 대구에 근무하다 서울 본사로 올라간 지인을 만났다.

1시간여 동안 이어진 대화의 대부분은 고달픈 서울 생활이었다. 서울 외곽에 사는 그는 새벽 5시 40분이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강남에 있는 회사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옮겨타며 걸리는 출근 시간은 1시간가량. 일찍 집을 나서지 않으면 정체로 출근 시간이 30분 이상 늦어진다고 했다.

승용차는 있지만 본사 주차장은 주차난으로 임원 이상만 이용할 수 있고 회사 주변 원룸은 월세가 너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마흔 중반의 나이. 아침은 김밥으로 때우고 직장 동료와 함께 식당을 찾을 때는 메뉴판 가격부터 살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했다.

서울에서 20여 년간 살다 몇 년 전 대구로 내려온 또다른 지인의 이야기다.

그가 정의한 대구란 도시는 살기 좋은 곳이다. 물가가 싸고 넓은 도로에 도시도 깨끗하다고 했다. 달서구에서 식당을 하는 그는 살기 좋은 도시 앞에 하나의 전제를 달았다. 일자리가 없다보니 젊은 사람이 없고 소비력이 떨어져 수입이 서울에서 생활할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동대구역에서 서울역까지 KTX를 타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

반나절 생활권이지만 서울과 대구의 경제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인구의 절반, 대기업 본사와 시중 자금의 90% 이상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돈도 일자리도 많다. 하지만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집값과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란 명성(?)을 갖고 있고 출'퇴근을 위해 하루 삶의 상당 부분을 소비해야 한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값 하락은 수도권 서민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5억3천100만원, 수도권 평균은 3억6천600만원이다. 높은 집값으로 인해 담보 대출 금액이 많을 수밖에 없고 집값이 하락하면 가계 부실로 이어지고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참고로 명색이 3대 도시인 대구의 아파트 가격은 서울의 1/3 수준인 1억6천만원이다.

일자리가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도 낮다. 취약한 일자리는 젊은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인구 구성상 20~40대 비율이 낮다. 구매력이 가장 높은 20~40대가 적다보니 돈이 도는 소비 구조도 허약하다.

물론 낮은 물가는 상대적으로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적은 경제활동 인구는 출'퇴근 정체나 범죄율을 떨어뜨리는 이점도 있다.

올해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3천 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구구절절 서울과 지방의 삶을 비교한 것은 이제 우리도 '성장' 보다는 '삶의 질'을 국가 정책으로 추구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경쟁 상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수도권 집중화가 심각한 나라다.

10년 전인 2002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큰 화두는 지방분권이었다.

유력한 대선 후보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선 전 대전과 대구에서 각각 지방분권 협약 서명식을 가졌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가 운영 패러다임으로 지방 분권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 후보는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행정수도 이전과 공기업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행정수도와 공기업 이전(혁신도시 조성)을 빼고는 지방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국가 정책의 화두에서도 지방분권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당시 추진됐던 지방분권 공약은 지방분권 특별법 제정,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자치단체로의 이양, 80%가 넘는 국세 비율 축소, 자치경찰제 도입 등이다. 핵심 내용은 지방 스스로 자립 발전할 수 있도록 돈과 권한을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12월 대선 정국으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선 전초전은 중요한 정책보다는 후보간 인신 공격과 정쟁으로 혼란한 상태다.

18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은 정책 대결이 우선시되고 한 흐름으로 지난 10년의 지방분권을 평가하고 지방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지한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 물론 후보들이 지방을 위한 실천적인 공약을 내걸고 대선 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방'도 자기의 미래를 위해 좀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재 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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