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부인사 주지인 종진 스님은 참 예쁘다. 하도 예뻐서 살짝 화장을 한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스님의 놀라운 운력(運力)을 보면 그런 불경스런 생각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자그마한 몸으로, 한 때 살림이 전무하고 인적마저 끊어져, 거의 폐사에 가까웠던 절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화사와 파계사 사이에 있는 부인사는 그 가람들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그러나 위세는 옛말이고, 지금은 명확한 이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누대를 이어온 와편들에는 '지아비 부(夫)'자가 쏟아지지만, 절 초입의 표지석에는 '부신 부(符)'자가 완연하다. 그래서 안내판에도 두 개의 이름을 같이 써두었다. '억지춘향'식의 한글 전용 사찰인 셈이다.
그렇다고 부인사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부인사는 두 가지 단단한 화두를 품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나는 신라 선덕여왕을 1세기 동안 향사해 온 인연 사찰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난해로 조조 천 년을 맞이한 초조대장경의 봉안처였다는 사실이다.
세속의 왕을 절에서 향사한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회주인 성타 스님의 회고에 의하면 예전부터 부인사에는 선덕묘가 있었고, 선덕여왕과 관련해서 천 년을 이어오는 온갖 설화와 구전들이 자못 많았다. 그런 하늘의 목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 중반 무렵이니 인연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최근 들어 성타 스님이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 작은 사당에 불과했던 선덕묘를 다시 짓고, 전각 이름을 '숭모전'(崇慕殿)이라 하여 그 격을 높였다. 그뿐만 아니라 '선덕여왕숭모회'를 조직해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성대한 숭모재를 지내고 있다. 남은 숙제는 숭모재의 원형을 복원하는 일이다. 과연 신라시대의 불교 제례는 어떠했을까.
사실 선덕여왕 숭모재는 노력하기에 따라 대구의 문화 콘텐츠로서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부인사라고 하면 초조대장경이 그보다 훨씬 더 큰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장경 하면 떠올리는 것은 당연히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전의 팔만대장경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더욱 자랑스럽지만 그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소실된 이후 무신정권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이름도 재조(再雕)대장경이다. 그렇다면 만약 초조대장경의 유허지가 발견된다면, 그 성과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고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런 관광자원이 또 있을까. 그런 국가 보물이 또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아쉬움투성이다. 1986년 처음으로 지표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중단과 재개를 되풀이하며 발굴 작업은 그야말로 지지부진이다. 2010년에는 초조대장경의 경판고로 추정되는 유력한 고고학적 단서가 나왔다. 고려의 축대 위 거대한 건물지와 회랑지가 확인됐다. 더구나 이 회랑지는 사고(史庫)처럼 통풍을 위한 특수한 시설이 되어 있어 더욱 희망적이었다.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발굴된 숯덩이가 13세기경의 것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얼마 전 인기 TV 드라마 '무신'에서 몽골의 침입으로 부인사와 대장경이 불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 이후 많은 시민들이 팔공산 올레길을 걸어 부인사를 찾았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부인사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찰 초입에 있는 포도밭 너머, 지난해 두 차례의 발굴 지역이 아직 정비를 마치지 못하고 무심하게 버려져 있었다. 3차 발굴로 이어져야 함에도 아무런 기약조차 없다. 삼광루(三光樓)에 준비해 둔 몇몇 전시물만 실망한 시민들에게 무심한 눈빛을 줄 따름이었다.
지난 30년 가까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은사 스님과 함께 이를 지켜봐 온 종진 스님은 애가 탄다. "여기까지 온 것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은사이신 성타 스님께서 처음부터 역사 공간과 수행 공간을 구분해서 30년 동안 유허지를 온전히 지켜냈어요.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애써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인연법을 믿습니다.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종진 스님의 예쁜 얼굴에 형형한 눈빛이 더해진다. 부인사 왕벚꽃나무 그늘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병수/달서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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