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에서 남유럽 변방의 가난에 찌든 후진국으로 전락하던 20세기 초 스페인 군대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당시 스페인군의 총병력은 16만 명에 불과했으나 장군은 무려 213명, 장교는 1만 2천 명이나 됐다. 장군 1인당 병사 수가 약 700명으로 대대 병력보다 적었던 셈이다. 장군과 장교만 많은 이 가분수 조직은 국가에 엄청난 부담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1921년 7월 20일 스페인 식민지 모로코에서 벌어진 치욕은 이를 그대로 보여줬다. 스페인 1개 사단이 모로코 저항운동의 지도자 아브드 엘 크림(Abd el-Krim)의 매복에 걸려 1만 명이 죽고 4천 명이 포로로 잡힌 것이다. 지휘관이었던 실베스트레 장군은 자살했다. 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주일 후 스페인군은 중요한 기지 하나를 또 엘 크림의 군대에게 빼앗겼는데 병사 7천 명이 더 학살당했고 장교는 모두 사슬에 묶여 끌려갔다.('스페인 내전' 앤서니 비버)
2차 대전 때 이탈리아군도 장군만 많은 군대의 전형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육군의 사단 수는 73개로 영국군(34개)의 두 배였지만 숫자 놀음이었다. 1개 사단은 3, 4개의 연대로 구성되는 것이 보편적인 편제인 데 반해 이탈리아군 사단은 2개 연대로 구성됐던 것이다. 또한 직속 포병연대도 형편없어 구경 100㎜ 이하 경포만 보유했다. 말이 좋아 사단이지 실제 전력은 영국의 여단이나 독일의 연대 규모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렇게 늘어난 '미니 사단'도 정원을 채운 사단은 19개뿐이었고 34개 사단은 정원의 75%, 20개 사단은 60%에 불과했다. 허풍 떨기 좋아하는 무솔리니가 1930년대 말 사단 수를 늘리기 위해 한 짓이었다. 결국 늘어난 것은 장군의 수였지 전투력이 아니었다. 이런 군대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이탈리아군은 그리스군에게도 얻어터질 만큼 공인된 동네북이었다.
국방부가 계룡대 육'해'공군 본부에 근무 중인 20명 안팎의 장군과 과장직 대령들을 야전으로 보낸다고 한다. 장군의 수를 육군 16∼17%, 해'공군 각각 12∼13%를 감축해 '전투형 강군'으로 전환키로 한 국방개혁(307계획)의 연장선상이라는 전언이다. 결국 지금 우리 군도 장군 과잉이라는 얘긴데 장군이 많다고 강한 군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사(戰史)가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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