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정치 이슈] 열마디 말보다 낫다 경선 후보들 슬로건의 힘

입력 2012-07-28 07:16:50

1980년 미국 대선에 나선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여러분의 삶은 4년 전보다 나아졌습니까?"라고 물었다. 경제가 나락으로 가라앉았던 전임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 때로 가고 싶냐는 '반(半) 협박성' 물음이었다. 이 슬로건 덕분에 레이건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카터의 재선을 막을 수 있었다. 슬로건의 힘이다.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짧은 단어로 뚜렷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여야 대선 주자들의 슬로건 경쟁이 뜨겁다.

◆정책 10개보다 나은 슬로건 한 줄

손학규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은 성공한 이미지 메이킹의 사례로 평가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나누기를 뜻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쓰인 것은 아니다. 당초 내세웠던 '정의로운 민생정부, 함께 잘 사는 나라'에 대한 호응이 미미하자 출마선언문 각론에 있던 이 문구로 대체됐다. 손 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의 정책 내용과 슬로건이 어우러지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며 "해방 후 60년 동안 한쪽에서는 부를 축적해서 비대해진 반면 다른 쪽은 저녁도 없이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당 김두관 후보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을 향하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시대적 과제인 양극화 해결에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는 게 김 후보 측의 설명이다. 또 박준영 후보는 "농부의 아들로 흙과 함께 자랐다"며 정직을 생명으로 하는 농부처럼 '정직한 농부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태호 새누리당 경선 후보는 '낡은 정치의 세대 교체'를 내세웠다.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되는 권력형 비리가 낡은 정치의 결과인 만큼 이를 바로잡는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당 안상수 후보는 "가계부채가 이미 국민 개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부실화된 가계부채는 금융권의 부실화를 초래해 정부에 엄청난 위협을 주고 있다"며 '빚 걱정 없는 우리가족, 변방에 희망 있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이 밖에'빚 없는 세상, 편안한 나라'(정세균 후보), '울화통 터지는 나라, 국민 화병을 고치겠다'(김영환 후보), '민생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조경태 후보), '탕탕평평 인권국가'(김정길 후보'이상 민주당)와 '걱정없는 나라'(임태희 새누리당 후보) 등의 슬로건도 민생 문제 해결과 통합 정치 등 시대적 과제를 담고 있다.

◆표절 의혹에다 임팩트 부족 비판까지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경선 후보는 슬로건과 PI(Presidential Identity'대통령 이미지)가 발표되자마자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경우다. '국민의 행복 미소'라는 개념을 담은 박 후보의 PI는 박 후보 이름의 초성을 딴 'ㅂㄱㅎ'과 스마일 이미지, 대화 모양의 아이콘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PI는 임태희 후보의 PI인 'ㅇㅌㅎ'을 따라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뜻이 모호해 '박 후보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당에서 가장 앞서가는 것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도 성공작이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헌신'용기'원칙을 키워드로 한 '대한민국 남자'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중도 폐기됐다. 이후 '사람이 먼저다'를 슬로건으로 채택했지만 두산그룹이 광고에 사용한 '사람이 미래다'를 차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게다가 2007년 대선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내걸었던 '사람이 희망이다'와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슬로건인 '국민이 먼저'(Putting people first)를 베낀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두관 후보의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을 향하여'와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의 '마음껏!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은 뜨지 않아 캠프 측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세균 후보의 '빚 없는 세상, 편안한 나라' 역시 너무 무난하다는 지적에 따라 교체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