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나 집착에 대한 강박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음반과 책에 대한 집착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후회를 하면서도 끌어안고 살다보니 정말 만만찮은 짐이 되고 말았다. 가끔 집에 온 사람들은 수천 장이 넘는 음반(시디와 엘피)과 방 하나 가득한 책을 보면서 핀잔을 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욕심을 자책하지만 막상 이런 저런 이유로 정리를 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불살생을 실천하는 인도의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한 곳에서 하루 이상을 머물지 않음으로써 집착과 소유를 버린다. 또한 단식을 통해서 몸을 완전히 비워 죽음을 맞이한다. 죽는 날 단 한 평의 땅도 가지지 않고 떠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과연 이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가지고 있는 음반들 중에는 한 작곡가의 같은 곡을 여러 장 가지고 있는 것이 꽤 있다. 또한 같은 곡을 같은 연주자가 연주한 여러 장의 음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나의 곡이 연주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곡의 깊이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같은 곡의 음반을 여러 장 가지고 있는 이유인데 그 중에서도 유독 많이 가지고 있는 음반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이 곡은 거의 40여 종이 넘는 음반을 가지고 있다. '첼로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이 곡은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곡이다. 더구나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전곡을 연주하고픈 욕심을 내는 곡이기도 하다.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녹음을 남겼고 지금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음반은 '첼로의 성자'라 불리는 스페인의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남긴 음반이다. 그 이유는 그의 연주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이 곡이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서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곡이지만 카잘스의 이름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곡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둣가의 오래된 악보 상점에 들렀다. 많은 악보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낡고 색이 바랜 한 묶음의 악보를 발견했다. 아,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나는 마치 왕관에 달린 보석들처럼 그 악보를 품고서 돌아와 방에 처박혔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계속 탐독했다. 그때 내 나이 열세 살이었지만 그 후 80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항상 생생하게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나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12년 간 매일 밤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지만 그 중 한 곡이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어떤 이는 단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12년을 넘게 연습한 그를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프랑코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10년 간이나 자신의 존재가치인 첼로 연주를 포기했던 그의 삶은 한 예술가가 지녔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 어떤 것인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든의 나이에 불과 이십 세의 제자와 결혼을 한 카잘스의 이야기가 노욕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숨을 거두었던 그의 진지함과 경건함 때문이다.
사실 카잘스의 음반들은 옛날 음반들을 재녹음한 것이 대부분이다. 해서 그 음반들 중 어떤 것은 잡음이 너무 많아 마니아가 아니라면 듣기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런 카잘스의 음반과 비교해서 들을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 곡을 네 차례나 녹음한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의 연주가 권할 만 하다. 헝가리 태생의 첼리스트인 그의 연주는 그의 강렬한 눈빛만큼이나 냉철하고 지적이다. 그리고 국내 연주자로는 양성원이 2005년 녹음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좋다. 깊은 밤, 사람의 심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악기인 첼로가 내는 경건한 생명의 소리를 듣노라면 정말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신에게 고해성사를 올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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