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전문점 창업을 목표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나에게 어떻게 처음 커피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아마도 내가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낸 우리나라 커피 산업에 대한 어떤 혜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동경의 시선으로 답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나와 커피와의 시작은 그야말로 미약한 어느 한순간이었으며, 거기에는 미래에 대한 혜안이나 수단으로서의 커피에 대한 의지는 결단코 없었다.
유난히 호기심도 강하고 생각이 많았던 나는 또래보다 심한 사춘기를 앓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산을 오르거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공상의 나래를 펴기 좋아했다. 내 생각과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학교 도서관에 박혀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도서관 출입이 잦은 나를 눈여겨보셨던 사서 선생님께서 사서실로 나를 불러 원두커피 한 잔을 직접 내려 주셨다. 그 순간 래빗홀(Rabbit Hole)을 따라 들어간 앨리스처럼 그 한 잔의 커피가 이끌어 준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커피라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커피 나라'는 정말 빠르게 변화했다. 당시만 해도 자욱한 담배 연기와 희미한 조명, 설탕과 프림이 듬뿍 들어간 황금 비율의 조합 등으로 연상되던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빠르게 진화해 넓고 환해진 공간, 금연, 테이크아웃 문화, 바리스타, 로스터리 카페, 핸드드립 커피 등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커피에 대한 지역민들의 사랑은 정말 각별했다. 한국의 시애틀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커피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구 커피 문화의 힘'은 지난해 처음 시작돼 올가을 더욱 성대한 규모로 준비되고 있는 제2회 '대구커피 & 카페 박람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커진 커피시장의 규모와 커피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산업 자체의 발전이라는 측면과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재조명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리스타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일면 급속한 양적 팽창으로 과열되고, 일부 왜곡된 현상을 보이는 것 같아 앞으로 커피업계의 장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앞서기도 한다.
더욱 거세져 가는 커피 열풍으로 인해 2012년 초 현재 등록된 커피전문점의 수만 해도 1만 3천여 개가 넘고, 2005년 처음 시행된 바리스타 자격시험에서 자격증을 딴 인원만도 5만 명을 넘어섰다. 큰 수고로움 없이 안정적 수익이 가능해 보이는 커피전문점, 그리고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낮아 보이는 진입 장벽으로 인해 쉽게 커피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짧은 기간 커피 교육기관의 교육을 통해 얻은 커피 제조에 대한 지식과 얼마간의 현장 경험으로, 커피를 업으로 대한다.
하지만 경력 20년이 넘어가는 나에게도 아직 힘든 바리스타로서의 길이 너무도 쉽게 이야기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서 업으로서의 커피는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경우를 본다. 커피를 업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취미를 위한 낚시를 하는 낚시꾼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몇 번의 낚시 경험과 어종에 대한 공부만으로 어부가 되는 것이 아니듯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전문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커피를 내리고 만드는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덕목들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나를 커피 전문가라 부른다. 나는 지금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커피와 커피전문점이 진정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스스로의 화두로 던진 지 오래다. 나는 낚시꾼이 아니라 어부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유태인 속담이 있지만 나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우선 바다를 지키는 법을 이야기하는 어부이고 싶다. 고기 잡는 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다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리스타에게, 또 바리스타이기를 꿈꾸는 모두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에 대한 논의는 그 커피를 가장 맛있게 마셔줄 고객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조금 먼저 시작한 업계 선배로서 커피보다 쓴 소주 한잔을 놓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안명규/커피명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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