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내려놓는 법을 아는 나무처럼

입력 2012-07-17 07:27:20

박정미 칠성고 교사
박정미 칠성고 교사

14년 전 신규 교사 때의 사진첩을 펼쳐본다. 아이들이 웃고 있다. 물론 어색하게 뒤로 숨어버려 머리카락만 나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때 아이들은 요즘처럼 얼짱 각도를 취하거나 손으로 얼굴을 다 가려버리는 센스없이도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학생인 듯, 교사인 듯 나도 서있다.

신규교사로서 실업계고(지금의 특성화고) 담임의 경험은 참 버거웠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걸 보여주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사진첩을 꺼내보면 미소를 짓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아이들이 옆에 있고, 선생님이라 불러줘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많이 웃는 사람이다.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이 웃는다. 신규 교사 때는 어색함을 모면하려고 웃었지만 지금은 행복해지려고 웃는다. 내가 행복하려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잘 웃지를 않는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하는 냥 투덜대고 지쳐있고 눈에 힘이 없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원래 그렇게 웃지 않을까? 웃는 걸 잊어버린 대신 누군가를 원망하고 투덜대는 문화로 바뀐 것 같다.

며칠 전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팔공산 종주를 올해의 극기 체험 활동의 목표로 잡고 출발하려는 아이들과 교사들은 정말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이 빗속에 등반은 무리라고 우려했지만 내리던 비가 잠잠해져 산을 올랐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며 하늘을 원망하더니 가뭄이라 용서하고, 인솔 교사를 원망하더니 나이 많고 약한 여자 선생님이 대부분이라며 자기네들끼리 용서해주었다.

"마음 편하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했더니 "이 상황이 뭐가 즐거워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같이 있잖아.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고, 나중에 너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와서 지금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투덜거려도 좋을 것 같고"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웃는다.

그 속에서도 친구를 위해 음악을 들려 주는 친구가 있었고, 바람에 뒤집힌 우산을 접어 주는 친구가 있었고, 흘러내리는 바지자락을 접어 올려주는 친구가 있었고, 집에서 아버지가 열심히 수학을 가르쳐 주는데도 잘 하지 못해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흙탕물을 피하기보다는 그냥 발을 물에 담그고 흥겹게 걷고 있었다.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자연을, 친구와 함께하는 활동을 훨씬 더 즐기고 있었다. 왜냐고 물으니 "지금은 이 활동 말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냥 편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비에 젖었지만 웃고 있다.

사람들이 "요즘 애들 험하고 말도 안 들으니 학교도 힘들지?"라고 물으면 나는 "그래도 아이잖아요"라고 말한다. 맞다. 학생은 아이니깐 우리 어른이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하면 투덜대고 고집피우는 것도 이해가 되고, 지도할 힘이 나고 방법이 생긴다.

우리는 내려놓기 전에는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 내려놓으면 잃을 거라 생각하고 짊어진 채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나무의 생을 통해 잠시 내려놓는 과정을 배우고 싶다. 새싹이 돋아나 세상을 푸르게 하고, 풍성한 잎사귀로 그늘을 만들고, 아름다운 단풍을 보여주고 스스로 낙엽이 되며, 내년을 위해 앙상한 가지만 남기는 그런 작은 나무가 되고 싶다.

박정미 칠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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