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도 '황성옛터' 부르며 '조선의 세레나테' 칭송
그해 늦가을 서울 단성사에서 공연의 막을 올릴 때 이 노래(황성의 적)를 배우 신일선에게 연습시켜 막간에 부르도록 했습니다. 신일선은 나운규가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에서 주인공 영희 역을 맡았던 어여쁜 배우였습니다.
이 곡을 듣는 관객들의 볼에는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타고 내렸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의 깊은 한숨까지 들렸습니다. 모든 청중들의 가슴에는 망국의 서러움과 가슴 저 밑바닥에서 비분강개한 심정이 끓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무대에서는 주로 이애리수가 이 곡을 불렀고, 1932년 봄 마침내 빅터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취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덧없난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난 이 심사를 가삼 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넷터야 잘 있거라.'
전국의 가요 팬들은 이 '황성의 적'('황성옛터'의 원래 이름)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레코드 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축음기 판매량도 늘어났습니다. 주로 악극단 공연이나 무대를 통해서만 보급되던 유행 창가나 영화 주제가들이 드디어 음반을 통해 정식으로 보급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 음반이 나오자마자 불과 1개월 사이에 5만 장이나 팔려나갔다고 하니 그 인기의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워낙 인기가 높아가자 일본 경찰 당국에서는 바짝 긴장의 털을 곤두세웠습니다. 혹시라도 이 노래의 가사 속에 민족주의 사상이나 불온한 내용이 없는지 뒤지고 두리번거렸지요. 극장에서도 반드시 임석 순사가 입회하여 흥분한 관중들 앞에서 가수가 이 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금지했고, 나중에는 기어이 트집을 잡아 발매 금지를 시키고 말았지요. 이 노래를 만든 작사가 왕평과 작곡가 전수린은 경찰서에 불려가 취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러하듯 금지 조치는 더욱 큰 반향과 호기심으로 연결되지 않습니까?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마땅한 노래가 없던 시기에 대구 신명학교에서는 음악시간에 교사가 이 노래를 가르치다가 파면됐다는 신문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식민지 시대 초반의 본격적 가요의 첫 작품으로 우리는 이 노래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배우에서 일약 대표가수로 발돋움한 이애리수는 민족의 연인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오죽하면 당시 서울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조선의 세레나데'란 표현을 썼을까요.
워낙 인기곡이어서 당시 서울에 문을 연 다른 레코드 회사들도 이 노래의 가사와 제목만 슬쩍 바꾸어서 다른 버전으로 음반을 찍어냈습니다. 배우 윤백단이 부른 '황성의 적'도 있고, 역시 배우였던 이경설이 포리도루에서 '고성(古城)의 밤'을 출반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임생원이 '야명조'(夜鳴鳥)란 제목으로 발매하기도 했습니다만 모두 오리지널인 '황성의 적'이 지닌 인기를 업고 등장한 유사품들입니다. 그 가운데서 단연 이애리수의 음반이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물론입니다.
이동순(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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