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資 문제 파고들어 '최소 이익보장' 덫 벗어

입력 2012-07-12 10:49:10

'혈세 먹는 하마' 범안로 협약 변경까지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민자 유로도로인 범안로 투자사와 실시협약 변경을 끌어내자 다른 지자체들이 자극받고 있다. 서울'인천'광주'부산시 등도 과다한 재정지원금과 통행료(요금) 인상으로 시민 불만이 높은 민간투자 인프라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과 함께 실시협약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 협약변경 어떻게 성사시켰나

대구시가 지난달 수성구 민자 유료도로인 범안로에 대한 재정지원금을 2천억원가량 절감하자 다른 지자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2002년 민자로 개통한 범안로(수성구 범물동~동구 율하동)는 시민들에게 '돈 먹는 하마'로 인식됐다. 시는 지금까지 매년 100억여원씩 총 879억원을 민자도로 운영 업체에 적자보전금으로 지원했다.

시가 당초 민자도로 사업자와 추정통행료 수입의 79.8%까지 보전해 주는 실시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통행료 징수기간인 2026년까지 4천498억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잖아도 재정규모에 비해 부채가 과도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시는 건설방재국과 감사관실을 중심으로 범안로 재정지원금 줄이기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건설방재국 등은 2010년 10월 민간사업자가 운영비를 당초 협약보다 적게 지출한 사실을 인지했다. 시는 범안로 사업자에게 운영비 지출 내역서를 요구했지만 민간업자는 경영효율로 운영비를 줄였다고 항변했다. 시는 민간업자의 운영비 내역 미제출을 들어 2010년 재정지원금 204억원을 유보하는 강수를 뒀다.

시의 의지를 간파한 대구동부순환도로㈜의 대주주인 맥쿼리인프라가 지난달 대한생명 등 4곳에 1천850억원을 받고 사업권을 매각하자 시는 신규 사업자를 설득했다.

시 관계자들은 인수금액, 지연이자 금리, 운영비 산정 등을 두고 수십 차례 설득과 압박을 병행한 끝에 추정 통행량의 80%까지 보전해 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을 비용보전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시는 2026년까지 범안로 투자사에 지불할 4천500여억원을 2천488억원으로 낮춰 2천10억원을 절감했다. 실시협약 변경은 민간 사업자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이 과정에서 법적 마찰을 우려한 기획재정부가 실시협약 변경시 자신들과 협의를 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민간 투자 인프라는 정부로서도 예민한 문제였다.

대구시 관계자는 "맥쿼리인프라와 대구동부순환도로 내부의 문제점을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민간투자 인프라 무엇이 문제인가

민간투자사업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민간투자 도로(터널)가 시민 혈세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재정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잘못된 수요예측 ▷부풀려진 공사비 ▷투자사의 편법적인 자본구조 변경 등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투자 인프라는 지자체가 수요예측을 잘못해 투자사의 수익이 줄어들 경우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의 계약을 하고 있다. 현행 MRG 비율은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가 최소운영수익의 80%다. 범안로는 79.8%, 대구부산고속도로도 77%나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용인 경전철의 경우 시는 15만 명 이용을 예측했지만 실제 이용자는 3만 명에 그쳐 용인시는 과도한 재정지원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날 지경이다.

2007년 기준으로 인천 문학터널의 경우 하루 평균 5만606대가 통행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 통행량은 2만5천837대에 그쳤다. 절반 수준을 가까스로 넘긴 수치이다. 대구 범안로도 시는 1990년대 범안로 계획 당시 외곽순환도로 건설과 주변 택지개발이 예정돼 있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각종 인프라 사업이 중단되면서 예측보다 실제 교통량이 30%가량 줄었다.

민간투자 인프라의 부풀려진 공사비도 시민혈세를 잡아 먹는 주요 요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대구~부산 민자고속도로는 연장이 82.1㎞로 ㎞당 건설단가가 271억2천만원이지만 도로공사가 건설한 청원~상주 고속도로는 연장 80.5㎞에 ㎞당 단가가 162억4천만원으로 차이가 108억여원에 달했다는 것. 또 80.9㎞의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의 경우에도 공사비가 많이 드는 교량과 터널은 청원~상주 고속도로보다 각각 15.3㎞, 10.75㎞ 적었지만 ㎞당 건설비는 184억1천만원으로 더 많았다.

권기일 대구시의원은 "민간 투자사들이 낮게 금융권 대출을 받은 뒤 출자한 운영사에 대출금 이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정지원금을 많이 타내고 자본감소를 통해 편법적으로 자본구조를 하는 것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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