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기업 간 불법적인 정보유출과 불합리한 지식침해로 인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화가 논의되는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갈등구조가 그 어느 때 보다 고조되고 있으며, 기업윤리가 주목받고 있다. 이 대립의 중심에 항상 '개발'과 '모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의 간극(間隙)이 매우 큰 것 같지만 때로는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분쟁의 엄청난 불씨가 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한때 지역 섬유산업에도 오랜 숙원사업 중의 하나이자 심각한 병폐로 지적돼 온 사안 중에 '남의 상품 베끼기'가 만연해 있었다. 오죽 했으면 '개발자는 다 망하고 베끼는 자는 흥한다'는 자조적인 산업문화가 오랫동안 팽배하기도 했다. 섬유상품, 특히 지역의 주종상품인 직물제품의 경우 제품의 기획에서 설계, 생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생산과정이 외견상 단순한 듯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하지만 농업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축적돼 온 경험에 의존하는 산업이어서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대부분의 공정이 복잡다단하게 분업화돼 있어서 상품이나 기술의 노출도 거의 일상화, 보편화돼 있다 싶이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의 노출은 지역 섬유산업의 태생과 연관이 있다. 지역 섬유산업은 국가적 수출 우선주의가 주도하던 시절, 단순 생산제조기반 조성과 빠른 환경적응으로 근대화가 시작됐는데, 실제로 시장이나 소비자의 기호도 전혀 모르는 채 오로지 종합상사, 무역상 등 주문자의 샘플에만 의존해 '붕어빵을 굽어내듯'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거의 같은 제품'을 단순 생산하던 관습이 30여 년 간 이어져 왔다. 당시에는 주문자의 맞춤제품을 적기에 제대로 생산해 내지 못하면 오히려 큰 낭패(狼狽)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섬유산업환경에 커다란 변화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 1997년말 발생한 IMF사태다. '언제나처럼 잘 있을 것 같던 시장'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그동안 내재돼 있던 갈등구조가 일시에 표출되면서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마침내 '배끼기 관행'이 최고조에 이른 1999년 7월 20일 '섬유산업에서의 불법복제 현실과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고, 2004년 9월 16일에는 청와대와 대구시에 섬유업계의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일부의 의견이 문서로 전달되기도 했다. 오히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쟁환경을 더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또한 이러한 관행을 국내 상황에만 정화시킨다고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게 아니라 주변국이나 경쟁국까지 감안돼야 하는 복잡한 사안임으로 '어려운 현실에 바탕한 해결노력'을 기울이는게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중론이 모아지기에 이르렀다.
이후 2007년 9월 10일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이 중심이 돼 '섬유카피방지 간담회'를 주선, 관련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기에 이르렀으며, 2008년 2월 28일 대구시장을 비롯한 섬유관련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침내 '섬유산업창조원년 선포식'을 가졌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 매월 1회씩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며, '자발, 자율적으로 참여한 업체'를 회원사로 해 각 회원사가 개발한 제품을 공개하고, 품평회를 가지면서 새로운 '산업문화', '기업문화'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개발이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방을 배움의 단순한 지식이라 한다면, 개발은 배움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기술 습득도 만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매우 어설프고 서글퍼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문화에로까지 승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작업을 잘 연마하면 기능이 되고, 이를 더 진전시키면 기술이 된다. 이러한 기술이 어느 경지에 다다르면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이 한 사회에 보편화되면 비로소 문화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지적재산권을 나타내는 영어의 '카피라이터'(copyright)도 '카피'(copy)와 '권리'(right)의 합성어이듯 국제적으로 개발은 모방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개발'과 '모방'에 관한 간극도 인류가 경제산업사회를 유지하는 한 하나의 영원한 현안으로 존재할 것 같다.
박원호/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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