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관심, 말로 뱉는 논술이죠"
월드컵만 되면 범어네거리는 붉은색/ 가을되면 시민야구장은 푸른색/
장을 보러가자 서문시장/ 칠성시장/ 막창 먹으러는 저기 안지랑/
('대구? 대구!' 중)
◆일상을 기록하는 청소년 래퍼, 김윤형 군
김윤형(19'대구 청구고 3학년) 군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래퍼다. 스스로 붙인 별칭은 'Bounce K'(바운스 케이). K는 자신의 성 Kim과 Korea를 뜻한다. 랩으로 자신은 물론 주변을 신명나게 만들고 싶어서란다.
김 군은 10대지만 7년 경력의 베테랑 래퍼다. 13살 때 힙합 음악에 빠졌다. 하지만 남들과 조금 달랐다. 직접 랩을 써서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고 싶었단다. "지금은 주변에 저처럼 직접 랩을 쓰고, 공연을 하는 또래들이 많아졌습니다. 함께 2, 3개월에 한 번씩 길거리 공연도 해요."
김 군은 이미 정식 데뷔도 했다. 지난해 KBS 대구방송총국 '도시탐험대' 프로그램에서 기획한 '대구를 노래하라' 프로젝트 앨범에 '대구? 대구!'라는 곡으로 참여한 것. "19년 인생을 보낸 내 고향 대구에 대해 랩하고 싶었어요. 랩에 대구 소개, 자랑은 물론 대구의 가능성도 녹여냈어요. 즐거워서 하루 만에 곡을 완성했죠."
평소에도 랩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휴대전화, 수첩 등에 메모를 한다. 아무래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친구들, 선생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버스에서 첫눈에 반한 또래 여학생을 좋아하는 랩도 써봤단다. 김 군에게 랩은 일기인 셈. 동시에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을 기록하는 '르포'이기도 하다. "거짓말 랩을 하지는 않죠. 랩은 자유롭게 나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랩=일기, 자유발언, 시…
기자는 "랩이 어른들에겐 자칫 가벼운 장난으로 비치지 않을까? 또 랩 스타일의 일종인 '갱스터 랩'을 들으면 정말 폭력배들처럼 '껄렁하게' 행동하지 않을까?"하고 물었다.
이에 김 군은 "오해와 편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제이 콜'이라는 래퍼는 10대들의 임신과 낙태 문제에 대해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랩을 했어요. 우리나라의 '디지'라는 래퍼는 정치 비판 랩을 하고, 실제로 국회의원 후보로도 출마하는 등 자기 관심을 행동으로 보여줬죠. 랩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넓은 도화지'이고, 사회적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열린 광장'입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권리가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란다. 김 군은 두발 자유화나 학내 동아리'창의적 체험활동 활성화 등의 변화는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랩도 그런 맥락에 있다는 것. "랩은 청소년들이 자기 이야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발언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소통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자유롭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랩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랩은 고난도로 운율을 맞추는 '시'이기도 하다. 김 군이 쓴 랩이 한 예다.
'분지라는 특성상 날씨가 매우 더워 . 거친 듯한 사투리 주지만, 사람들 속은 다 .'('대구? 대구!' 중)
표시가 된 부분은 김 군이 의도적으로 맞춘 운율이다. 모두 'ㅏㅡㅐ' 음절로 통일됐다. 같은 음절이라 발음이 비슷한 단어에 리듬의 강세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직접 랩을 할 때의 호흡과 정해진 분량도 고려해야 한다. 랩 쓰기가 장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랩은 시사 이슈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확한 용어를 찾아 써야 하며, 내용에 위트를 가미하는 감각도 있어야 술술 풀어낼 수 있는 글쓰기다. "랩 작사가 논술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하고 싶은 세상 이야기를 형식에 맞춰 논리정연하게 풀어내고, 퇴고 과정을 거치면서 저절로 자기 생각이 정리됩니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논술 글쓰기보다 끌려요."
◆청소년들이 랩에 빠져드는 이유는?
올해 고3인 김 군은 음악 활동을 잠시 접고 수능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등교한 뒤, 7교시 정규 수업을 하고, 2교시 보충 수업을 하고, 야간 자율학습에 심야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다. 그래도 학교생활 틈틈이 연습장을 꺼내 고3 생활을 랩으로 기록한다. 그러면서 답답함을 덜어낸 틈새에 꿈을 녹여 넣는단다.
김 군은 "어른이 돼도 계속 랩을 하겠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 더 많은 경험을 할 것이고, 그만큼 다양한 주제로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랩을 쓸 수 있을 거예요. 개인이 외로운 섬과 섬이 돼 좀체 소통하지 않는 시대에 저처럼 자기 얘기를 자유롭게 내뱉는 개인이 늘어나면 우리 사회는 더욱 사람 냄새 나고 살 만해지지 않을까요? 아,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나요? 사실 랩은 놀이나 취미라도 참 좋습니다."
지역 청소년들의 길거리 랩 공연과 녹음 스튜디오 사용 등을 지원하고 있는 인디053 신동우 기획팀장은 "랩을 하고 있고, 또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지역에 꽤 많다"고 했다.
"어린 친구들이 자기 삶에 대해 '왜'라는 화두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면서 자기 진로를 정한 다음, '어떻게'를 고민하는 어른스러운 청소년들도 봅니다. 랩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기 고민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적어보고, 또 상대방에게 털어놓고 공유하는 경험을 합니다. 재미나면서도 깊숙한 대화인 셈이죠. 또한 랩은 자기 생각을 쓰고, 발표하고, 청중의 반응을 얻는 하나의 완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죠. 이런 매력에 많은 청소년들이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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