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82)] 존 콜트레인 (하)

입력 2012-07-05 14:25:11

철학적 성찰…재즈를 언어 초월한 정서로 승화

마일스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와의 활동을 통해 명성을 확인한 존 콜트레인은 1950년대 후반 이후 솔로이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혀간다. 특히 1959년 발표한 앨범 'Giant Step'은 존 콜트레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연습을 위해 고안한 독창적인 코드 진행을 표현한 작품이다. 당시 재즈계의 분위기는 코드보다 음계에 치중하는 연주가 일반적이었는데 존 콜트레인은 오히려 코드 진행이라는 굵직한 틀 속에 복잡한 음계를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게 된다.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존 콜트레인은 평단과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재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걸작들을 쏟아낸다. 당시는 비틀스와 밥 딜런으로 대변되는 록과 포크 음악의 시대였고 재즈는 대중적으로 한물간 음악 취급을 받았지만 존 콜트레인은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성공을 거둔다. 사실 존 콜트레인의 음반이 성공을 거둔 것에는 의아한 부분이 있다. 하드밥 시대를 함께 연 '맥스 로치' '스티브 래이시' '소니 롤린스' 같은 음악가들이 예술적 위상에 비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지만 존 콜트레인은 달랐다. 그렇다고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 대중 지향적인 음악도 아니었고 오히려 멜로디의 전개 등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존 콜트레인은 당대의 스타일을 규정한 전설로 여겨진다.

하드밥 시대를 연 존 콜트레인은 특유의 학구적이고 연습벌레 같은 기질을 이어간다. 하드밥에서 프리재즈로 스타일을 바꾼 그는 인도와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고민으로 해법을 찾는다. 철학적 성찰과 신비주의를 접목한 이 시대의 스타일은 재즈를 신대륙의 정서에 국한시키지 않고 언어와 지역을 초월한 정서로 승화시킨다. 당시를 함께한 '맥코이 타이너'(p), '지미 개리슨'(b), '엘빈 존스'(ds)와의 4중주는 재즈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며 혁신적인 콰르텟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의 산물인 앨범 'A Love Supreme'의 발표와 월드 투어는 존 콜트레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다. 앨범과 투어의 성공 이후 7명의 연주자를 받아들여 또다시 새로운 스타일을 고안한 그는 1965년 한 해 동안 무려 15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가운데 새로운 레코딩만 5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기 발표한 앨범은 수많은 어워드를 석권하기도 하는데 특이한 점은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서도 최고의 평점을 받는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알아듣기 어렵고 연주자들조차 따라 하기 힘든 음악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이후 재즈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음악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음악에만 몰두한 존 콜트레인은 1967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짧은 생애였지만 존 콜트레인의 삶은 재즈와 철학적 성찰에 대한 교본이나 다름없었고 지금도 수많은 연주자들이 그를 추종하고 있다. 마지막 그의 곁에는 밴드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그의 아내이며 가장 열렬한 추종자였던 앨리스 콜트레인(맥로드)이 있었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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