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치열한 자기수양과 실천, 남명 조식

입력 2012-07-04 07:40:43

KBS1 '역사스페셜' 5일 오후 10시

KBS1 TV '역사스페셜-책을 뚫고 현실로 나아가라, 남명 조식' 편이 5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1501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난 남명 조식은 조선 '처사'의 상징이다. 처사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이를 일컫는다. 누구보다도 학문을 강조하고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으나, 남명은 책에서만 길을 찾은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늘 몸에 방울을 달고 칼을 차고 다녔다. '성성자'라고 불린 방울을 차고 다닌 이유는 걸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기 위해서였고, '경의검'이라고 불린 칼을 품고 다닌 이유는 사욕이 일어나면 단칼에 베어버리기 위해서였다.

남명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조정에서는 끊임없이 벼슬을 제안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1555년 단성현감을 제안 받았을 때 쓴 남명의 사직 상소는 조선을 뒤흔들었다. 문정왕후를 과부로, 명종을 고아로 표현하면서 타락한 권력을 질타했던 것이다. 또 남명은 이론만 앞세우고 현실을 외면하는 학자들도 통렬하게 비판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명의 제자 50명이 의병장으로 분연히 일어났던 것도 평소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한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권력에는 한 줌 욕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지리산에 대한 사랑만은 지극했다. 살아생전 지리산을 열두 번이나 올랐으며 환갑의 나이가 되서 더는 지리산을 오르기가 어렵자 아예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자신의 마지막을 지리산과 함께했다. 부조리한 현실과 결코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던 선비, 그러나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책을 들고 칼을 들도록 가르쳤던 선비. 남명 조식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돌아본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