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이웃에 대한 단상

입력 2012-07-03 11:11:31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웃에 대한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온갖 뉘앙스로 회자되며 별다른 저항 없이 우리를 에워싼다. 가볍게 스치는 봄바람처럼, 다소 고상한 무게를 실어서 혹은 쾌적하게 행복한 의무를 싣고 우리를 스쳐간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행복한 의무인가? 이 문구에 잠시라도 머물러 보시라.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이 말씀은 실천 강령 아닌가. 당장 나는 우리들의 '이웃'에서부터 머뭇거리게 된다.

날마다 보도되는 극악무도한 이웃들로부터 콩 한 쪽도 나누려는 애틋하고 살뜰한 이웃에 이르기까지 나를 둘러싼 이웃의 스펙트럼은 한량없이 넓고도 많다. 영화 '밀양'이나 '퍼니 게임'에서 보여주듯 선량한 이웃은 죽음과 파괴의 괴물로 돌변하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승인된' 이웃을 가정하며 그 이웃을 안다고 믿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지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그 대상'인 이웃은 정작 죽어갈지도 모르며 혹은 피시식- 김 빼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기도 한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이웃, 이웃의 상실은 어떤 의미일까. 이 사라진 이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며, 누가 찾아낼 것인가. 아니 찾아낼 필요가 있을까?

얼마 전 기차역에서 본 일이다. 캄보디아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퉁퉁한 여인은 자기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는지 무작정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던지… .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그녀 주변은 미래를 보장하는 지방정부들의 희망에 찬 문구들과 이미지가 널려 있다. 그녀의 건조한 태도, 한가롭기까지 한 복장, 낯선 외양과 불안정한 운율 속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들, 이 모두가 내겐 어색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캄보디아 여인이 '이렇게도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가까이 있구나, 그런데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웃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찢어지면서 생긴 파열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떤 소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웃과 만난다는 것은 귀찮거나 듣기 싫은 소음을 듣는 일이기도 하다. 경미하든 막대하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웃의 소리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연히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연히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소음을 제거하거나 모른 척하려는 개인의 저항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와 이웃의 관계 문제, 이미지가 가로막고 있는 이 이웃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에 중핵을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웃'이란 '원리적으로' 자기의 이해 너머에, 완전한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문제는 '정말로 잘 모르거나 나를 불쾌하게 하는 것'과 대화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절반쯤 실패하며 이어가는 소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외부의 '미지의 세계'로 열린 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 대해 불편을 기꺼이 겪고자 하는 노력,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여는 창조이기도 한 것이다.

이웃을 향하여 문을 달아 주는 일. 그 문을 기꺼이 열어보고 그쪽으로 나서 보는 일. 이 모두는 보다 섬세하게 이웃을 살피는 일이고 전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겪는 일이며, 어떤 질적 변화를 수용하게 되는 길인 것이다.

사실 '나의 이웃 그리고 누군가의 이웃'인 나는 이미지라는 차양 속에서 이웃(외부)과 서로 소통하지 않으며 자기 환상의 쳇바퀴 속에 섬으로 떠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이미지의 차양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이웃과의 만남은 요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 또한 누군가의 이웃이므로, 내 밖으로 걸어나가는 일 또한 요원하다. '이웃'은 아무리 우리 가까이 있다 하더라고 우리 외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이웃이란 노력과 불편을 겪어야만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그런 대상인 것이다.

남인숙/미학박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