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주인공은 끝까지 놀아야 한다/내 보물 일기장

입력 2012-06-29 07:52:03

♥수필1-주인공은 끝까지 놀아야 한다.

6월 16일. 모처럼 아들의 생일이 토요일이다.

생일이 평일일 때는 친구들이 학원 가기 때문에 초대를 못 하였지만, 이번만큼은 꼭 초대하고 싶다기에 며칠 전부터 아내는 집 안 청소를 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덟 명의 친구들이 방문을 하였고 저마다 생일을 준비한 모양이다.

그중 한 명이 "나는 현찰이야" 하며 5천원을 내놓으며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야" 하는 것이다.

부연 설명을 듣자니 본인이 받은 선물 중 현찰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나?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날라다 주며 5학년 남자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들만의 상식이 있었고, 그들의 문화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된 아들은 음식은 뒷전이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시작했다.

컴퓨터 주변으로 몰려든 아이들이 3D 게임에 푹 빠져들자 그중 목소리가 굵직하고 듬직한 친구가 고맙게도 게임을 중지시켜 주었다.

"야, 게임 많이 하면 뇌세포가 죽는다더라.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하며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거나 싫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활력이 된다.

한참을 그렇게 재잘거리더니 장소를 옮겼는지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다.

아내는 피로함 때문인지 안방에서 조용한데,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더니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가 남았는데, 오늘의 주인공이니까 끝까지 놀아줘야 한단다.

의리를 지키겠다는 아들을 기다리며 이제 마냥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고 아빠보다 더 나은, 훨씬 더 멋진 남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수필2-내 보물 일기장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끈기를 갖고 해오던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일기 쓰기다. 10살 때쯤 고모가 생일선물로 사준 일기장이 계기가 되어 33살인 지금까지 쓰고 있다. 식구가 많아서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부모님은 안 된다고만 하셨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많았다.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날 때에는 일기장에 털어놓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의 부모님과 친구 문제, 공부 문제 등등 주로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일기장에 많이 썼던 거 같다. 내가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더 일기장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에게 아버지 대신으로 필요했던 존재인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어 갔다. 직장에서 속상했던 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등등 그것을 일기로 썼다. 그 일기를 아버지가 보실 거라 믿었던 것이다. 물론 매일 쓴 건 아니었다. 펜을 들고 싶을 때, 그때마다 난 일기장을 찾곤 했다. 최근에 논술지도과정 수업을 듣게 되었다. 책을 읽는 방법과 글 쓰는 요령을 배우는 동안 너무 즐거웠다. 사실 일기를 자주 써서인지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어느덧 책장에는 몇십 권의 일기장이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개의 적금통장보다 책장에 꽂혀 있는 내 일기장을 볼 때면 정말 든든하다.

이제 일기장은 내 보물이 되어 버렸다. 전자신문, 이메일이 흔한 세상이 되었지만, 난 일기를 쓰라고 꼭 권하고 싶다. 그것은 나중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으니까.

일기장아, 나를 지켜줘서 너무 고맙구나.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했구나. 이젠 자주 만나자. 죽을 때까지 나랑 함께하자

조문희(대구 달성군 화원읍)

♥시1-우리 할머니 텃밭 갔다 오시면

우리 할머니 텃밭 갔다 오시면,

텃밭이 다 따라와요.

이건 나무 기둥 붙들고 선 가지,

저건 울퉁불퉁한 고랑의 파,

이건 맵디매운 양파.

우리 할머니 텃밭 갔다 오시면,

텃밭이 다 따라와요.

맨 나중에는

잘 가시라고 손짓하는 지렁이 모습이 따라와요.

조영준(대구 경동초등학교 5학년)

♥시2-6월

헤일 수 없는 삶의 아쉬움

침묵으로 지키며

당신을 침묵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왜 가지 끝에

멈추어야 하나요.

나의 일상

속속들이 헤집으며

길고 긴 어둠 속에서

한 시대의 표상이었던 당신

돌덩이 화병에

색 바랜 플라스틱 국화 한 묶음

그 밖에 가진 것이 없음을

당신은 아시나요.

부서진 뼈마디 겨우 가늠하며

당신의 이름으로 지키는

침묵의 시간.

부르는 소리는 나비 되어

피곤한 날개를 접고

빛으로 다가서는 당신의 고통 또 하나의 빛 되어

새로운 하늘을 열고

아픔의 씨앗으로 자라나는

당신은 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민창기(영천시 대창면 병암리)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서경아(김천시 평화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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