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냐, 보전이냐…갈림길에 선 '문명의 요람'
인류문명의 젖줄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진통을 겪고 있다.
터키는 이미 유프라테스 강에 아타튀르크 댐을 만든 데 이어 티그리스 강에 일리수 댐을 지을 예정이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라크와 시리아는 터키가 티그리스 강물을 독점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으며, 댐 건설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가 파괴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터키 'GAP' 곧 완성
영국의 문명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터키는 인류문명이 살아 있는 야외박물관 같은 나라"라고 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차로'에 위치한 터키는 기원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명을 교차시키며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터키 남동부 토로스 산맥에서 발원한다. 두 강이 만나는 이라크 남부 지대를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인류 최고의 문명이 발생했다.
두 강이 발원하는 터키는 1976년 '남동부 아나톨리아 개발계획'(GAP)이라는 거대한 국토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두 강을 종합적으로 이용하는 목표를 밝혔다. GAP는 곧 완성을 앞두고 있다.
유프라테스 강은 터키에서 발원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가는 길이 2천800㎞의 긴 강이다.
터키는 1년에 25억t의 물이 흐르는 이 강에 높이 169m, 길이 1천600m에 이르는 거대한 아타튀르크 댐을 만들었다. 이 댐은 최대 저수량이 500억t에 이른다.
이 댐은 GAP에 의해 만든 것이다. GAP는 관개시설과 수력발전시설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모두 22개의 댐이 계획돼 있다. 이 중 17개가 이미 완공됐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19개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돼 터키 전력의 22%를 공급한다.
아타튀르크 댐은 1983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5년에 완공했다. 이 댐은 터키 남동부 지역의 농업용수 확보와 전력 생산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이 댐은 이 지역의 식수난을 해결하고 목화 등 농산물 재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이 댐에 있는 수력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댐 건설 당시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 댐이 건설되면 수력발전용수와 농업용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심하면 식수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두 나라는 이 댐의 건설을 반대하면서 국제적으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일리수 댐' 논란
유프라테스 강과 나란히 흐르는 티그리스 강은 총 길이가 1천900㎞로, 서아시아 지역 최대의 수량을 자랑하고 있다.
티그리스 강 유역에 들어설 예정인 일리수 댐 건설을 두고도 국제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
일리수 댐은 30년 전부터 구상돼 설계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댐 건설 지역이 세계적인 문화유적지이자 다양한 생물의 보고라는 점에서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건설작업이 진척되지 못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일리수 댐이 건설되면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있는 하산케이프 지역이 수몰된다. 하산케이프는 수많은 정복자들이 거쳐 간 터키의 고대 도시다. 이 때문에 로마와 아랍, 몽골, 오스만 제국 등의 문화유적이 곳곳에 있다. 일리수 댐이 건설되면 기원전 수천 년부터 이곳에 있는 유적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터키 정부는 낙후된 터키 남동부 지역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일리수 댐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세계 환경단체 등은 유적 및 환경 파괴를 우려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문화유적들을 해체해서 유적 공원으로 이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주민들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유적을 보존하려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고대 유적들은 해체작업을 시도할 경우 깨지기 쉬운 석재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댐 건설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는 많다. 터키 정부는 낙후된 쿠르드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안의 일환으로 일리수 댐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땅과 재산을 잃고 이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는 댐 건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 쿠르드족이기 때문에 터키 정부가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을 제거하기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댐이 건설되는 티그리스 강을 공유하는 이라크와 시리아도 반발하고 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라크와 시리아는 터키가 티그리스 강물을 독점하려고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 찬'반 엇갈려
고대 역사에서 제국들 간 투쟁이 지속됐던 분쟁지역인 하산케이프는 최근 주민들 사이에서도 댐 건설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 측 주민들은 "댐이 건설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가 파괴된다"며 댐 건설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메르와 로마, 오토만 제국의 기념물 등 고고학적인 유산이 가득한 계곡을 수장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일자리 창출과 남동부 빈곤지역의 재건, 인프라 확충, 경제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해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 댐을 건설하면 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며, 분리주의 단체인 쿠르드족과의 투쟁으로 많이 훼손된 지역에 수십만 명의 관광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주민 모하메드 사일란(24) 씨는 "지역 경제가 침체돼 주민들의 생활이 어렵다"면서 "댐을 만들면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하산케이프 다리 옆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불렌트 바사랸(40) 씨는 "댐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댐이 생기면 문화유적이 물에 잠기고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큰 댐이 아니라 작은 댐을 여러 개 만들어 문화유적이 수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 압바스 달한(27) 씨도 "문명의 요람이자 수많은 종교와 인종이 거쳐 간 곳이 사라지고 고향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터키 디야르바키르에서 글'사진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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