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융합의 매직

입력 2012-06-26 07:34:01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자전거를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패배의식에 절어 있던 나약한 그에게 자전거는 마술이었습니다. 잽싸게 자전거에 올라타 무게중심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달아나던 소년,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전거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쑥 찾아오는 어두운 과거의 잔재로부터 도망가야 했으니까요.

자전거로 단련된 청년의 힘차고 실팍한 다리는 어느덧 그를 모든 무리를 제치고 선두에 나서게 할 만큼 훌륭한 사이클 선수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레이엄 오브리, 세계사이클 챔피언의 이야기입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을 때 사람의 다리에 저장된 화학에너지가 고스란히 자전거의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기구입니다. 자전거의 구조와 주행에는 많은 과학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마찰력, 관성, 원심력, 가속도, 에너지보존….

오브리의 실화를 다룬 '플라잉 스코츠맨'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그것을 과학으로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브리는 자전거 전용경기장인 벨로드롬에서의 1시간 세계신기록에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회를 위해 훈련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자전거의 핸들 바를 분리해 거꾸로 끼웠습니다. 핸들의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자전거 타는 자세를 낮추어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전거의 속력을 높이기 위해 집안에 있는 세탁기의 베어링을 뜯어내 기어의 부품을 만들고 몸체도 가벼운 재질로 바꾸었습니다.

과학으로 고안된 자전거로 경주에 나선 오브리가 새의 뒷덜미를 닮은 헬멧을 쓰고 벨로드롬을 따라 한 마리 솔개처럼 날았습니다. 코너를 돌 때의 원심력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경사면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회전관성으로 달리는 자전거바퀴도 바퀴살을 한 면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달성한 그의 1시간 기록은 50.69㎞, 세계신기록인 51.151㎞에 조금 못 미치는 기록이었습니다.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서는 힘을 더 내 속도를 높이거나 자전거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도전을 결심한 그는 새로 조립한 그의 자전거로 다음날, 9년 동안 깨지지 않던 세계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 후 몇 차례의 도전과 실패, 이어진 재도전으로 마침내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가야 했던 잠재의식 속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슴속 그늘과 싸워야만 했던 한 청년이 과학으로 만들어진 그의 자전거로 매직을 일구었습니다.

8년 전 외국의 섬나라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1년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가 도서관에서 한국인들이 기증하고 간 책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외국소설, 국내소설, 장편, 단편, 수필 등 과학을 전공한 제가 평생 손댈 것 같지 않은 다양한 문학작품들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사물을 보며 감성보다는 이성에 더 많이 의존하여 느끼고 표현하던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과학도 이야기를 담고 감성을 실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곳에 매직이 있다고 했습니다. 몇 년 전 그가 스마트폰의 페이스타임 기능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화면 가득 환하게 나타난 친구의 얼굴, 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던 어느 아빠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었습니다.

감성을 가진 사람이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가진 사람이 감성을 사용한다면 그때의 기술은 매직이 됩니다.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융합이 대세인 시대입니다. 학문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고 천문, 우주, 역사, 과학, 문학, 종교 의학 등 모든 학문이 포함된 거대사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던 기존방식의 연구에서 벗어나 기술, 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융합의 매직,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입니다.

백옥경/구미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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