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부러진 권위

입력 2012-06-25 07:04:16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나 믿음'. 사전에서 찾아본 '권위'라는 낱말의 뜻풀이다. "그만한 힘은 있으니 믿어 달라." "믿음을 받는 만큼 힘이 생긴다." 힘과 믿음의 팽팽한 긴장과 조화는 '주의'(主義)라는 껍질을 두르는 순간,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인 권위주의로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참 묘하고도 딱한 노릇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2011)은 대학 입시에 출제된 수학 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징계를 받고서 재임용에서 탈락한 어느 교수의 이야기다. 이후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며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승강이 중 일어난 '석궁사건'에 대한 고군분투기다.

애초에 그리 심오한 학문적인 논쟁이 아니었다. 악법에 대한 분노나 거룩한 사법투쟁도 아니다. 학문의 전당을 자처하는 학교라면, 수학 문제의 잘못은 수학적인 논리로 한번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사회 정의 구현의 보루인 법정이라면, 제발 더도 덜도 말고 정해진 법대로만 잘잘못을 가려달라는 것이다.

"정말 눈치코치 없는 숙맥이야? 아니면 저 혼자 튀어보자는 수작이야 뭐야!" 학교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열린 징계위원회 뒤편에서 들려오던 동료 교수님들의 비아냥거림이다. '대법원이 전국 수석 부장판사회의 개최, '석궁사건'을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엄단의 의지 재천명'.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터져 나온 지극히 초법적인 분노와 아우성이다.

애초에 지키자고 정한 약속을 정한 대로 지키자는 것이 보수주의자라면,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서 되묻는다. 지금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과 신성한 법정 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자는 과연 누구냐고? 재판관, 바로 당신들이다!

이건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들의 일방적인 독재일 뿐이라고. "이게 뭔 재판이야, 개판이지." 마지막으로 내뱉는 목소리가 퍽이나 공허하다.

'존경심이란 자신을 낮추고 상대편을 높이어 공경하는 마음이다. 자만심이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는 피어나지 않는 연꽃이다. 겸양이라는 연못을 마음 안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피어나는 연꽃이다. 강요에 의해서 드러나는 존경심이나 두려움에 의해서 드러나는 존경심은 모두 모조품이다. 인품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러한 모조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중에서) 세상은 황홀한 모조품과 불편한 진품 사이에서 아직도, 몹시 흔들리고 있는가보다.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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