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남긴 '소유한다는 것은'이라는 글은 우리가 재물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는 데에는 어느 정도 재물이 필요하다. 재물 자체가 악은 아니며 부자라고 다 비난받는 것도 아니다. 단 부자가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 곳간의 문을 닫아버릴 때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늘 해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안해하고, 다행히 정년을 맞아 퇴직을 한다고 해도 미래의 불안함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늘어난 수명에 비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적다 보니 앞날에 대한 생각으로 대부분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50대'에는 많은 것을 이루고 이제 인생을 즐길 때라고 하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은 '막막'할까 '막연'할까.
'막막하다'는 의지할 데 없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주 넓거나 멀어 아득하다라는 뜻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로 쓰인다. '막연하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아득하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렴풋하다를 뜻하며 "나는 막연하게나마 이모를 이해할 것 같았다."로 활용한다. '막연'은 어렴풋해 구체적인 실체가 잡히지 않을 때, '막막'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쓰인다.
'막막하다' '막연하다'와 같이 '차별'과 '차이'를 구별해 보자.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것,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한다. "인사 과정에서 지연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그것은 정도나 순서의 차이일 뿐 본질의 차이는 아니다."로 각각 쓰인다. '차이'는 서로 같지 않고 다른 정도나 상태, '차별'은 그러한 차이를 두어서 구별한다는 의미까지 나타낸다.
"어떤 이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봄으로써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나와 남이 따로 없게 되는 것이다." 틱낫한의 말처럼 나와 남의 차이를 따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게 어려운 일일까?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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