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학교폭력?…농구공에 담아 던져버렸어요"

입력 2012-06-25 07:57:15

대구 성광고 농구동아리

농구로 친구를 사귀고, 선후배 간의 정을 쌓는 성광고 농구부. 팀워크를 내세운 성광고 농구부는 이달 열린 두 개 대회서 우승을 거머쥐며 동아리계의 농구사관학교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농구로 친구를 사귀고, 선후배 간의 정을 쌓는 성광고 농구부. 팀워크를 내세운 성광고 농구부는 이달 열린 두 개 대회서 우승을 거머쥐며 동아리계의 농구사관학교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성광고 농구부 명단(12명) 도주호 김석현 유정혁 최영진 여상훈(3학년) 박영현 김명수 정홍식 김동근 신원균 권종현(2학년) 장현익(1학년)
*성광고 농구부 명단(12명) 도주호 김석현 유정혁 최영진 여상훈(3학년) 박영현 김명수 정홍식 김동근 신원균 권종현(2학년) 장현익(1학년)

한때 농구가 남자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적이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 않았던 때, 농구는 축구와 함께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농구 골대 밑에는 많은 학생이 몰렸고, 그들은 슛을 쏘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장동건이 주연한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 빨간 머리 강백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농구를 좋아하는 고교생들의 성장기를 맛깔나게 그렸던 만화 '슬램덩크' 등을 본 그 당시 청소년들은 농구공 하나만 있으면 즐거웠고, 또 쉽게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청소년들에게서 농구의 인기가 시들어버렸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던 청소년들을 보는 게 이젠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 아랑곳없이 33년 전통을 지키며 농구를 통해 선후배 간의 정을 쌓아가는 동아리가 있다. 대구 성광고등학교 농구동아리는 1979년 창설돼 지금까지 '페어플레이 정신'과 협동'단결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3년째 이어온 농구 전통

성광고 농구동아리는 이달 7일 대구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제13회 클럽대항 청소년 생활체육 농구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구지역 고교 18개 팀이 참가했는데, 성광고는 두 개팀이 출전해 모두 결승에 올랐다. 전반 열세를 딛고 경기 후반 안정을 찾은 A팀이 승리를 거두며 승패가 갈렸지만, 늘 함께 운동을 해왔던 친구들이었기에 1등과 2등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성광고 농구부는 이에 앞서 6일 열린 제12회 대구시장기 농구대회서도 우승을 차지해 이틀 동안 두 개 대회 우승이란 값진 성과를 거뒀다. 클럽대항 농구는 3대 3의 길거리 농구였고, 시장기는 정규 룰대로 5인제로 치러져 성광고 농구부는 2관왕과 함께 두 부문에서 모두 우승한 팀이 됐다.

평소 시간을 쪼개 연습한 게 결실을 맺자 학생들은 커다란 성취감을 얻었다. 시장기 농구대회서 MVP를 거머쥔 정홍식(2년) 군은 "농구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시합에서 이기려면 팀원 간 호흡이 중요하다"며 "각자의 역할에 전력을 기울였기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구사관학교로 불리는 이 학교 동아리는 지금까지 20여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끈끈한 선후배 간의 정

이 동아리는 지금의 1학년까지 30여 년째 회원을 모집하며 뿌리 깊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농구가 좋아 모였지만 단순히 학교 동아리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동아리를 거쳐 간 선배들은 후배들의 시합이 있을 때면, 음료수를 사오고 시합이 끝나면 밥을 사주는 등 든든한 후원자로 선후배 간의 정을 이어가고 있다.

동아리 농구부 코치인 김성준(22기) 대구농구연합회 사무국장 역시 이 학교 농구 동아리 출신이다. 그는 바쁜 일상에도 시간을 쪼개 후배들이 연습할 때, 또 시합이 있을 때면 벤치를 지킨다. 김 씨는 "졸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코치가 되는 건 오랜 전통이다"며 "후배들이 선배들의 뜻을 이어가며, 좋은 만남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고 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아니다. 오직 후배들 잘되라고, 선배가 나서는 무료봉사다. 훈련할 땐 무척 엄하게 후배들을 독려하지만, 땀 흘린 뒤에는 형처럼 스스럼없이 후배들과 어울린다. 후배들이 고민이 있을 땐 멘토가 되고, 배가 고프다면 지갑을 열어 빵을 사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도 한다.

이 동아리를 거쳐 간 선배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농구공을 놓지 않고 있다. OB팀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 연습을 하며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 학교에 농구 골대를 세워줬는가 하면 농구공 등 용품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학교생활도 즐거워요

이 동아리는 왕따나 학교폭력이 없는 청정지역이다. 농구를 공통분모로 만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된다. 실력이 조금 떨어지면 조금 더 나은 친구가 도와주고, 도움받은 학생은 학업 등 다른 고민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 간다.

무엇보다 선배에서 후배로, 또 그 후배로 이어져 온 농구부 규율은 학생들을 예의 바르고 착실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고 있다. 농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큰 학습은 바로 팀워크다. 박영현(2년) 군은 "개인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깨지면 힘을 잃어 다른 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며 "농구를 하면서 친구의 성격, 습관까지도 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릴 때도 있지만 그 감정을 쌓아두지 않는다. 곧바로 불만을 털어놓고, 대화로 풀어가는 것도 선배들에게서 배운 동아리 규칙이다.

그래서 몸으로 부딪치는 다소 격한 운동임에도 거친 구석이 없다. 서로 친절하게 대하며 배려하는 것이 이 농구동아리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권종현(2년) 군은 "서로 밀어주고 다독이고, 3학년 선배들도 1학년 후배들을 대할 때 질타보다는 따뜻한 말로 충고를 해주며 신나고 정이 넘치는 학교생활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합 때 만나는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금세 친구가 된다. 대구에는 영진고'강북고'영남고'달성고'심인고 등이 농구 동아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 농구로 이들은 교우관계를 넓히는 기회를 얻는다.

◆추억을 만드는 농구부

혼자 PC방에 앉아 있기보다 공을 들고 림을 향해 슛을 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학생들은 일단 코트에 들어서면 거친 숨을 내뱉을 때까지 뛰고,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체력이 저절로 길러지는 이유다. 살이 찐 학생은 몸무게를 줄이게 되고, 점프동작이 많다 보니 성장판 자극으로 키도 쑥쑥 큰다.

무엇보다 농구를 하면서 익힌 집중력과 체력이 학업에 이어져 쉽게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 게을렀던 학생들은 좀 더 부지런해졌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데는 농구만 한 게 없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농구 잘하는 것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가르쳐 달라는 친구도 있고, 대회가 끝나면 SNS 등에는 멋지다는 글들이 댓글로 올라온다. 학교에서는 대회 우승 등으로 학교 이름을 빛내니 자랑거리가 된다.

변희국(8기) 대구농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은 "농구는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길러준다"며 "친구를 믿어야 하고, 장단점과 성격까지 다 알아야 해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교우관계와 건전한 정신을 길러주게 된다"고 말했다.

3학년들이 입시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자연히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이제는 2학년이 주축이 돼 팀을 이끌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성광고 농구부 명단(12명)

도주호 김석현 유정혁 최영진 여상훈(3학년)

박영현 김명수 정홍식 김동근 신원균 권종현(2학년)

장현익(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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