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아는 자, 줄을∼ 서시오!…줄 서는 맛집의 비밀은

입력 2012-06-23 16:24:55

이달 19일 오전 대구 남구 이천동 한 중국음식점에 20여 명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 중국음식점의 주력 메뉴인 짬뽕.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이달 19일 오전 대구 남구 이천동 한 중국음식점에 20여 명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 중국음식점의 주력 메뉴인 짬뽕.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동성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이색 대기표인 헬멧.
대구 동성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이색 대기표인 헬멧.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뜬 대구 중구의 한 초밥 전문점.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뜬 대구 중구의 한 초밥 전문점.
동성로 한 핫도그 전문점은 화려한 불쇼와 직원들의 친근한 코멘트가 줄 서는 지루함을 없애 준다.
동성로 한 핫도그 전문점은 화려한 불쇼와 직원들의 친근한 코멘트가 줄 서는 지루함을 없애 준다.

'줄 서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맛집'이란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집'의 줄임말이다. 최근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맛집 소개가 열풍으로 번지면서 이젠 국민 누구에게나 익숙한 신조어다.

맛집 열풍이 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맛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왕 한 끼 먹는 거 맛있는 걸 먹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직장인들은 맛집에서 맛난 점심을 먹으며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 젊은이들은 맛집 방문을 놀이로 즐긴다. 맛집에 몰려가 웃고 떠들고 맛보며 '맛집 인증샷'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 식도락 마니아도 많이 생겨났다. 예컨대 서울에서 대구로 맛집 탐방을 와서는 막창, 납작만두 등이 참 맛있다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못잖은 맛집견문록을 남긴다.

그런데 맛집은 두 가지로 나뉜다. 그냥 맛집과 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맛집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손님은 왕인데, 감히 뜨거운 땡볕 아래 줄 서게 하는 무례를 범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음식점 주인은 "줄을 서시오!"라고 강요한 적 없다. 줄 서기를 택한 것은 손님이다.

줄 서는 맛집, 그 '줄'이 생기는 원리는 무엇일까?

◆줄 서는 맛집, 전격 분석

이달 19일 오전 대구 남구 이천동 한 중국음식점. 점심시간이라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음식점 앞에 손님 20여 명이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많았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곳은 대구에서 얼큰한 짬뽕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특징은 보통 오후 3, 4시 사이에 음식 재료가 다 떨어져 문을 닫는다는 것. 그래서 서둘러 한 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든다. 직장인 박근식(33) 씨는 "직장 동료들과 차를 타고 20분 걸려 왔다. 그런데 20분 넘게 줄 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곳 음식점에서는 땡볕에서 줄 서 기다려야 하는 손님들을 위해 우산을 빌려 준다. 쓰고 기다리며 조금이나마 햇빛을 피하라는 것.

취재진이 분석해 보니 이곳은 줄 서는 맛집이 될 수 있는 요건 여러 가지를 갖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음식 맛이다. 진하고 걸쭉한 짬뽕 국물은 해장을 원하는 직장인, 알싸한 매운맛을 즐기는 젊은이들 입맛을 모두 충족시킨다. 30년 이상 된 음식점 역사로 미뤄 어르신들 입맛 역시 충분히 사로잡는다.

그다음부터는 천혜(?)의 요건이다. 음식점 바로 옆에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다. 멀리서 차를 타고 오는 손님도 여럿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음식점이 주택가에 뜬금없이 홀로 자리해 있어 가까운 거리에 다른 음식점이 없다. 따라서 손님들은 일단 한 번 줄을 서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음식점이 비좁은 것도 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곳 테이블은 달랑 6개. 4명씩 꽉 채워 앉아야 최대 24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 부부는 음식점을 확장하거나 넓은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저씨(남편) 올해 나이가 일흔다섯이고, 저는 예순일곱입니다. 늙어서 뭘 다시 새롭게 벌일 기력이 없어요. 그리고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지금 자리가 명당인데 뭣 하러 옮깁니까?(웃음)"

주인 부부는 매년 여름이면 석 달 정도 음식점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줄을 서며까지 찾아 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계속 짬뽕 국물을 끓여내려면 여름마다 체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 올해도 마찬가지다. 노부부의 여름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큰한 짬뽕을 맛보고 싶은 독자들은 지금 서두르시라.(단, 일요일은 쉰다.)

◆맛 따라 줄 따라

'노부부의 짬뽕 맛집'을 닮은 맛집이 대구에 여럿 있다. 서구에 있는 한 닭개장 전문점은 파격적으로 짧은 운영 시간을 자랑한다. 점심시간인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문을 여는 것. 그만큼 줄 서기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직장이 가까이 있어 종종 찾는다는 김모(29) 씨는 "한두 명이 가면 '자리 없다'며 구수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하지만 일단 테이블에 앉으면 붉고 진한 국물 맛에 감동하고, 식사하는 사람들 부담 준다며 줄 선 사람들은 절대 안으로 들이지 않는 주인 할머니의 배려에 감동한다. 줄 서기 경쟁부터 음식 맛까지, 역동적인 점심 식사의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중구 약령시 인근에 있는 한 칼국수 집에도 점심시간이면 긴 줄이 선다. 주력 메뉴만 엄선한 간단 차림표가 특징이다. 칼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이 전부. 반찬도 달랑 김치 하나뿐이고, 그나마 직접 덜어 먹어야 한다. 그래도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몰려든다. 칼칼하고 시원한 칼국수 맛이 이유다. 줄 서 기다리던 한 직장인은 "맛이 있어 온다. 반찬 수가 적다거나 음식점 내부 인테리어가 낡은 것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맛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즐거운 줄 서기

지금까지 맛을 위해 손님들이 줄 서기를 감내하는 사례를 살펴봤다. 하지만 지루한 줄 서기를 즐거움으로 승화시켜주는 맛집도 있다. 지루한 건 절대 못 참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들이다.

대구 동성로의 한 핫도그 전문점. 이곳은 음식점 내부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무조건 줄 서 기다려야 한다. 주변에 비슷한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 즐비하고, 음식점 내부에 테이블이 여럿 마련된 곳도 많다. 그 때문에 여기서 줄 서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다. 하지만 그래도 줄을 서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일까?

손님들은 줄 서면 관람할 수 있는 핫도그 '불쇼'를 이유로 꼽았다. 대학생 김민정(26'여'달서구 두류동) 씨는 "마치 바텐더가 칵테일을 제조하듯 화려한 손놀림으로 핫도그를 불에 구워 준다. 또 기다리는 손님이 지루할 틈이 없도록 직원들이 재미있게 말을 걸어준다"고 말했다.

동성로에 있는 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아예 음식점 바깥에 대기소를 운영한다. 그런데 이곳 손님들의 특징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 그래서 대기부터 주문까지 전 과정에 젊은 여성들을 위한 즐거움과 편안함을 녹여 넣었다.

대기소 안에는 푹신한 소파와 패션 잡지 등이 구비돼 있고, 여름에는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어준다. 대기소 안에서 기다리다 보면 20대 미남 직원이 큰 목소리로 호명을 한다. 미남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면 건장한 남성 직원들이 우렁차게 환영 인사를 한다. 황홀한 기분에 빠져 카운터로 가면 테이블 번호가 적힌 헬멧을 나눠 준다. 이 헬멧을 쓰고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다 주문을 하면 남성 직원이 갑자기 하이파이브를 요청한다.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짜릿한 스킨십을 즐기고 난 뒤 주문은 마무리된다. 적어도 한 달에 세 번은 이곳 음식점을 찾는다는 유모(27'여) 씨는 "여왕 대접을 받으니 긴 대기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이 기분을 맛보기 위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맛집에 줄이 생기는 원리는?

19일 오후 대구 중구 한 초밥 전문점. 점심시간도 아닌데 네댓 명이 음식점 앞에 줄 서 있었다. 취재진이 미처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맛집인 듯했다. 줄 서 있던 한 커플은 "인터넷에 '대구'와 '초밥'을 함께 검색했더니 이곳을 소개하는 블로그 게시물이 여러 개 떴다. 그래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주부 권고은(35'수성구 범어동) 씨는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리는 것을 수차례 봤다. 맛집인 듯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맛집 블로거들이 맛집을 소개하고 입구에 긴 줄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는 맛집을 발굴 및 소개하는 주요 창구가 됐다.

이 외에도 전문가들은 맛집에 줄이 생기는 원리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내놓는다.

대구맛집 푸드앤카페 소주형 본부장은 "맛집에 줄이 생기는 것은 결국 맛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알바를 고용해 홍보용 줄을 만드는 짝퉁 맛집도 있다. 하지만 그 줄은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찾지 않아 곧 사라질 소나기 줄이다. 맛은 거짓말 안 한다. 지속적으로 줄이 생기는 곳은 신뢰할 만한 맛집인 셈"이라고 말했다.

심리학적 분석도 있다. 경북대 심리학과 김지호 교수는 두 가지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동조 현상'이다. 김 교수는 "대구의 대표적인 맛집 골목인 막창골목, 조개구이골목 등에 가 보면 한 음식점은 손님이 바글바글한데, 바로 옆 음식점은 텅텅 빈 경우를 볼 수 있다. 동조 현상에 의해 손님이 있는 곳으로 손님이 몰린 것이고, 맛집에 줄이 생기는 것도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며 "소비자가 뚜렷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을 때는 일단 타인의 선택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브랜드 신뢰 효과'다. 김 교수는 "음식 맛을 결정하는 것은 음식 자체의 맛뿐만 아니다. 예컨대 신문 맛집 기사에 대해 소비자가 신뢰하고 믿으면 실제 음식을 먹으러 가서 '맛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음식점 앞에 줄을 섰다면 이미 음식이 맛있다고 확정 지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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