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사는 게 고달프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인생

입력 2012-06-23 16:59:36

인생/위화 지음/백원담 옮김/푸른숲 펴냄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소설이다. 장예모 감독에 의해 '인생'(Lifetime)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원래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판됐지만 개정판에서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소설은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란과 문화대혁명을 견뎌낸 푸구이(福貴)라는 노인의 인생역정을 그렸다.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먼저 보내야 했던 늙은 농부가 저물어가는 자신의 인생을 마주 보며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회상기다. 주인공의 이름도 풍자에 능한 작가 위화답게 '복되고 귀하다'는 뜻의 '푸구이'라 붙였지만, 노인의 인생은 질척대는 진흙탕 그 자체였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방탕한 생활과 도박으로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예쁜 부인과 결혼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모른 채 노름으로만 가산을 탕진한 푸구이. 그리고 잠시 정신을 차리지만 뜻하지 않게 장개석의 국민당 전쟁터로 끌려간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전쟁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푸구이는 가정에 충실하고 헌신하지만 안타깝게도 딸 봉하가 큰 병을 앓고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이후 공산당이 집권하게 된 중국에서는 지주로 불리는 자들의 처형이 시작됐다. 여기에는 그 옛날 푸구이의 돈을 따 부자가 된 용이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푸구이는 그가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며 도박으로 가난해진 것을 행복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운명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들 유경이 헌혈을 하다가 그만 숨지고 만다. 그나마 벙어리인 봉하가 결혼을 하면서 푸구이의 인생도 소소한 생의 즐거움을 찾아가나 싶지만 봉하는 아들 고근을 출산하다가 죽고, 몇 년 째 골골 앓던 푸구이의 아내 가진 또한 죽고 만다. 더구나 손자 고근이 4살 되던 해 사위 이희마저 공사장에서 사고로 죽게 되면서 푸구이는 어린 손자 하나를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말지만 그 손자마저 갑작스런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푸구이의 곁에 남은 것은 소 한 마리뿐이었다.

홀로 남겨진 푸구이. 숨이 막힐 듯 고통스런 나날이지만 그래도 그는 견디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냥저냥 목숨을 이어나가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운명은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견디고 또 하루하루를 이어나간다. 이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가난도, 혁명도 문제가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생이 재미있는 일과 즐거움의 환희로 가득하기를 기대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흔히 "사는 게 재미없고 고달프다"는 푸념을 자주 내뱉는다. 그러나 작가는 "사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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