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에 꽃피는 외국인 이주여성 전성시대. 이런 가상을 해 본다. 대구경북 27개 지역구 가운데 제19대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비례대표 의원)처럼 국회의원이 탄생하고, 대구지방법원 앞에는 외국인 이주여성 변호사가 간판을 걸고 이주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의사'간호사'공무원'세무사'법무사'관세사'언론인'교사'보험설계사'방송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며 활동반경을 넓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멀지 않은 미래의 현실일 수 있다. 외국인 이주여성들도 이런 시대를 간곡하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더디기만 하다. 고작해야 제조업 근로자, 학원강사 또는 계약직'일용직(아르바이트)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뭄에 콩나듯 외국인 공무원, 통역사, 교사 등이 존재할 뿐이다.
꿈은 꾸라고 있다. 앞으로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많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전문분야에서 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이들은 이주여성 전성시대를 열 주역들이다. 또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역량을 펼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아마도 한국은 다문화사회의 틀을 확고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이주여성들이 모여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통역서비스센터와 음식점을 찾아갔다.
◆대구의료통역지원센터, '주부면서 통역사'
"일감을 더 주세요. 경쟁력 있는 통역업체입니다."
지난 4월 서비스 교육 및 관리업체 ㈜세마그룹(대표 우기윤)의 자회사인 대구의료통역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주축은 외국인 이주여성들이다. 윤려화(41'중국)'송효리(34'중국), 도티투항(31'베트남), 쥬누쉐바 아이다(29'키르기스스탄), 라브리노바 루드밀라(36'러시아)가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한국인인 장정윤(30'여)'박지혜(28'여)'윤홍배(24'영상물 담당) 씨 등이 이들의 전문업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은 수입구조가 탄탄하지 않지만 앞으로 대구시'법원'검찰, 경찰, 엑스코(EXCO) 등의 통'번역 일도 도와주고, 대구를 찾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들을 위한 통역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원활한 수입구조가 생기면 더 많은 이주여성들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는 카페도 만들고, 5, 6개 외국어 통역 일을 조금씩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아직 월 수입은 100만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5세 아들이 있는 결혼 7년차 윤려화 씨는 달서구 다문화지원센터의 취업상담을 통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 윤 씨는 "무역회사에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중국 통역 일을 많이 할 생각"이라며 "의료 통역은 '배탈''설사' 등 어려운 용어들이 많지만 잘 극복해 실력있는 통역사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결혼 10년차 도티투항 씨는 "북구 다문화센터에서 일자리를 소개해줬다"며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도 대구에서 당당하게 커리어우먼으로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좋아했다.
2명의 자녀을 둔 결혼 7년차 쥬누쉐바 씨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음대를 나왔다. 키르기스스탄 전통악기인 '코무스'(기타와 비슷한 악기)를 잘 다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외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마침 한국 남자와 만나게 돼 대구까지 오게 됐다"며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장대 높이뛰기 스타인 이신바예바의 통역을 담당하는 등 보람된 일을 많이 해서 기뻤다. 올해부터는 전문통역사로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 아들'딸 2명의 자녀를 둔 결혼 7년차 루드밀라 씨는 러시아 극동인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경방대에서 국제관광학을 전공하고 지금도 방송통신대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이곳의 생활이 재미가 있다"며 "한국말은 배우면 배울수록 너무 미묘하고, 어렵지만 전문통역사 일을 하는 만큼 더 노력해서 훌륭한 통역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겐 소박한 꿈과 거창한 꿈이 있다. 소박한 꿈은 다같이 자녀들을 데리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교외로 소풍을 가는 것이고, 거창한 꿈은 통'번역 전문가로 많은 수입(300만원 이상)을 벌면서 대한민국에서 인정받고 사는 것이다.
◆맛으로 만나는 다문화, '맛나多'
'인도 카레'오니기리'팟타이'월남쌈'파인애플 볶음밥'캄보디아 닭죽(개발 예정메뉴) 등'.
외국인 이주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달 30일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1745의 6번지'053-583-1285)에 문을 연 식당 '맛나多'. 이곳에는 외국인 이주여성 3명이 주방 및 홀 서빙을 책임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온 윙티흥(26'한국이름 이선혜), 부티탄후엔(29'정미영) 씨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온 비체카(25'윤은혜) 씨. 한국인 주부 2명도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식당 대표를 맡고 있는 신석순(62) 씨와 한국요리 및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박정미(40) 씨. 이들 5명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위치가 그리 좋지 않지만 맛으로 승부를 걸며 식당 성공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다. 개업을 할 무렵 주변의 도움이 많았다. 마을기업으로 지정돼 행정안전부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았고, 성서산업단지에서 외국인 이주여성들에 관심이 많은 ㅌ기업이 2천만원을 줬다. 성서종합사회복지관도 이 식당의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이제 식당의 경쟁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진정 맛으로 승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곳은 기본 이상의 맛을 자랑하지만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외국인 이주여성들은 집에 가서도 남편이나 자녀들을 대상으로 맛 테스트를 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반면 가격 경쟁력은 있다. 음식값이 결코 비싸지 않다. 3천500∼5천원이면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윙티흥 씨는 "2년 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제 식당을 잘 해서 자녀도 잘 키우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며 "핸드폰 공장에도 2년 동안 다니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 집 가까운 곳에서 자녀를 돌보면서 식당 일을 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비체카 씨는 "아직은 요리 실력이 많이 부족한데, 많이 배우고 있다. 남편이 몰라보게 달라진 제 요리실력에 놀랄 정도"며 "캄보디아 전통요리인 닭죽을 잘 개발해 한국인에 맞는 특별메뉴를 만들 것"이라고 주먹을 쥐었다.
부티탄후엔 씨는 "남편이 개업할 때, '대박 나세요'라며 화분을 갖다줬는데 많이 감동했다"며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가정도 더 행복하고 싶은데, 이 식당이 그 두 가지를 모두 채워줄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외국인 이주여성들이 주축인 이 식당에는 아직도 개업 당시 3명의 이주여성 남편들이 보낸 화분들이 있다. '대박나세요, -민승 아빠-''부자되세요! -정미영 가족-''대박나세요, -박영조-'. 이 바람대로 이들 이주여성들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식당은 또 수익금의 일부를 장애인과 복지시설을 위해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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