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열정의 상실

입력 2012-06-19 10:45:37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한다. 그래서 연인들은 밤 12시가 넘어 헤어지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옇게 날이 밝아올 때까지 전화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상식과 이성의 눈으로는 이들의 행동을 납득하기 힘들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 상식과 이성이라는 자기 검열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면 또 눈이 밝아진다. 사랑에 빠진 눈은 평범한 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눈, 심드렁한 눈이 결코 찾아내지 못하는 상대의 장점을 찾아낸다. 큰 하품으로 드러나는 목구멍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사랑에 빠진 눈이다.

사랑,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아마 열정과 상통하리라. 열정은 이른바 '접신(接神) 상태'와 비슷하다. 접신 상태의 제사장 혹은 무속인이 내뱉는 말은 신탁이다. 사람의 몸과 육성은 매개물일 뿐이다.(그가 가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신탁인 셈이다.

열정은 흔히 예술인의 몫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활에 찌든 일상인에게도, 아니 생활에 찌들어 있기에 오히려 일상인에게 더 절실한 항목이다.

세상이 바빠지고 '틀'과 '테크닉'이 부상하면서 열정은 뒷자리로 밀려났다. 열정으로 포장된 행위조차 의무와 테크닉에 머무는 경우도 흔하다. 예컨대 자신이 가진 카메라의 기능을 100% 숙지하고, 그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를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고, 그가 찍은 사진을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카메라의 기술적 한계를 벗어나는 지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예술의 경지' 혹은 '접신의 경지' '사랑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매사가 그렇다.

사랑은 접신이고 열정이다. 변하기 쉬운 연인에 대한 사랑 말고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몰두하는 눈은 평범한 일상인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일상인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못 본 체할 수 있다.

먹고사는 일은 필생의 과업이지만, 평생 그 과업에만 매달려야 하는 삶은 우울하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한두 가지쯤 엉뚱한 일에 빠져들 수 있다면 어제까지 듣지 못했던 종달새 노래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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