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젊은이, 아름다운 도전기
도전이 아름다울까? 과연 '죽고 싶도록 쓰라리고 아픈데도…, 회복 불능에서 계속 헤매는데도…, 가족까지 잃었는데도….' 인생은 그렇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실패로 인해 허우적거리고, 계속되는 '머피의 법칙'(하는 일마다 불운이 연속적으로 닥침)으로 인해 고통의 바다에서 오랫동안 방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도전은 아름답다. 청년이라면 더 그렇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회적 멘토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젊은 날, 고생은 사서도 한다' 등의 저서나 격언으로 이 시대의 우울한 청년들을 위로해 준다. 실패와 고통의 끝에서 '해피엔딩'을 이루면 더 좋다. 갖은 고생 뒤에 '성공' 또는 '대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도 있다.
사실 100명의 청년 창업자 중 성공한 이들은 과연 몇%나 될까? 아마도 10명 중 1명도 성공하기 힘든 것이 냉엄한 정글의 현실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대구지역본부(본부장 심현석)의 추천을 받아 아름다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도전하는 젊은 사업가 3명을 만났다. 인생 역정들이 흥미로웠다. 갖가지 아르바이트 경험, 신용불량자 신세, 사고로 인한 아픔 등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있는 이들이었다. 3명의 도전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1. 강지훈 강앤박메디컬 대표
강지훈(40) 대표는 척추 고정기구 추간체 고정체를 특허 내 전국 병원에 공급하는 잘나가는 사업가다. 아직 연간 매출액은 7억원에 불과하지만 미래는 밝다. 그의 과거는 어두웠다. 실패와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 편안한 연구원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끓는 피는 결국 사업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부도를 맞아 신용불량자 신세로까지 떨어졌고, 그 와중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병역 특례업체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고 나서 무슨 용기가 나서인지 저를 포함해 7명의 박사들과 함께 가정용 환기'청정 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박사들 중 제일 나이가 어렸지만 대표이사를 맡게 됐고, 이후 삼성'LG 등이 비슷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어려운 환경에 내몰렸습니다. 그 짐은 대표이사인 제가 다 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땅까지 팔았지만 빚이 너무 많아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2007년에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그 빚은 계속 갚아나가야 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너무도 큰 실패를 맛본 강 대표는 2010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선임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후 생활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도에 따른 후유증도 서서히 털어냈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 생활도 잠시. 그는 다시 사업 도전에 나섰다. 재료공학 전공의 아이디어를 잘 살려 척추 수술에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추간체 고정체 아이디어를 내고 식품의약품안전청 심사관으로 잠시 일하면서 새 사업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이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도전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큰 실패를 맛본 탓인지 이번엔 작은 배를 잘 운항하고 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 곽선희 관리이사가 회사 살림을 맡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지난해 1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런 안팎의 도움에 힘입어 강 대표에게는 2010년 이후 좋은 일들만 생겨나고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 발명전시회 특별상에 이어 매출 상승과 판로 확장, 그리고 해외 진출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내년 매출액 목표는 20억∼40억원이다. 그는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저의 성공 스토리를 흐뭇하게 보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2. 배재민 펀치라인 대표
대구에서 개인 로스팅 업체로는 생산규모 면에서 최상위권에 속해 있는 배재민(34) 대표는 아르바이트의 달인으로 불릴 만하다. 아이스크림 가게, 당구장, PC방, 심지어는 보험 영업까지 했다. 고생은 고생이지만 나름 목표가 있었기에 그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즐기듯 했다.
한양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식품업체인 ㈜대상에서 밤낮 구분없이 오로지 일만 한 배 대표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실제 하루걸러 코피를 쏟는 등 체력에도 문제가 많이 생겨 직장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는 모아둔 돈 5천만원으로 아이스크림'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이태리 정통 아이스크림인 젤라또를 팔았는데 대구에는 이 아이스크림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아이스크림 사업은 실패한 업종으로 접어야 했다.
배 대표는 이후 커피 생산 및 재료 개발 등에 매진했다. "커피는 문화이고, 아이스크림은 유행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벌써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제 회사인 펀치라인에서 좋은 품질의 커피와 스무디 원료 등을 공급하니 경쟁력이 생기더라고요. 중견기업인 서강유업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오직 품질과 제 열정을 보고 기술 개발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더 큰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배 대표 역시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일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에 모든 것을 던질 무렵 국내 커피 로스팅 업계의 대부가 그에게 기술을 전수해줬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대구지역본부에서도 5천만원을 지원 받았다. 이후 그의 커피 판매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매월 2t(4천만원 상당)을 생산하며, 다른 음료의 원료'소스까지 합하면 연간 매출액이 1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는 "아프기도 하고, 온갖 아르바이트 등으로 사회 경험을 한 것이 사업을 하는 데 큰 밑바탕이 되고 있다"며 "사업 성공에 이어 예쁜 아내와 올해 태어날 용띠 딸은 내 인생의 더 큰 대박"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3. 이상필 이상전자 대표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 산학협력관에 가면 이상전자가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성공신화를 만들려는 포부가 큰 청년사업가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곳이다. 바로 차량용 탄소 저감장치를 개발해 국내용 및 해외용 차량에 보급을 앞두고 있는 이상전자 이상필 대표. 그는 29세 청년이다.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생산직으로 꽤나 괜찮은 직장에서 잘나갔다. 하지만 회사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사업가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교육자(학교 교장)인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산에서 직원 2명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며, 국내 자동차회사와 부품회사를 상대로 각종 제품 제안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다.
1년 남짓 야심 차게 사업을 이끌었지만 결국 매출은 없고, 쪽박만 차게 됐다. 이 때문에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이 씨는 밤에는 택배 알바 등의 생활을 하며 버텨봤다. 결국 도산하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다.
"새로운 도전이 이내 시작됐습니다. 2010년 경북 청년CEO 모집 광고를 보고 주관기관인 대구대에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그 사업이 선정됐습니다. 지원금도 받게 됐죠. 대구대에서도 직원들의 월급 50%를 지원해주고 있으며,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도움도 받고 있습니다. 대박의 희망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는데 또 교통사고가 나 3, 4개월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박차고 일어났다. 이 대표는 획기적인 차량용 탄소 저감장치로 2011년 대한민국 벤처 창업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다녀오고, 국내 투자사로부터 투자 초기계약 약속을 받아냈다. 일이 잘 진행될까 싶었는데 올 초 그는 개발 중인 차를 몰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모든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었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의 유명 자동차 회사들과 기술제휴 및 투자협상을 하고 있다. 국가 개발과제(2억6천만원) 등도 수행하고 있어 희망적이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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