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육아 스트레스 해방" 직장맘 "어린이집 찾아헤매요"

입력 2012-06-14 10:42:14

중단위기 무상교육 시행 100여일…달라진 풍속도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만 0~2세 영아 무상보육이 주부들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전업주부들은 양육비 부담을 덜게 됐다며 반기는 반면 직장인 주부는 오히려 어린이집을 구하기 힘들게 됐다며 불만이다. 0~2세 영아 보육료 지원사업이 시행된 지 100여 일이 지나면서 젊은 엄마들의 생활상이 변하고 있지만 영'유아 보육료 지원사업은 예산이 모자라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전업주부 "육아에서 해방"

주부 임효진(33'대구 달서구 본리동) 씨는 한 달 전부터 2살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다. 임 씨는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양육 부담을 덜게 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임 씨는 "매달 보육료 30만~40만원을 아낄 수 있게 됐고 육아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일자리를 얻은 데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0~2세 아이를 가진 전업주부들은 '육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하지만 무상 보육을 안 받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주부들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부 박모(29'대구 달서구 감삼동) 씨는 최근 "어린이집 보육료가 공짜인데 안 받으면 바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2살 난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록했다. 박 씨는 요즘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모여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쇼핑을 다닌다. 박 씨는 "처음엔 오후 2시에 아들을 데리러 갔지만 최근에는 저녁 무렵에 아들을 데리러 간다"고 했다.

수성구 한 어린이집 원장 김모(61) 씨는 "최근 일부 전업주부들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록 아동을 데리고 가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어린이집 찾아 헤매요"

맞벌이 부부들은 무상보육이 되레 역차별을 일으키고 있다고 불만이다. 무상보육 혜택을 받으려는 학부모가 몰리면서 인기있는 어린이집은 정원이 꽉 차기 때문이다.

직장인 류모(31'여'경산시 정평동) 씨는 최근 어린이집으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어린이집에 딸을 맡기고 출근하는 류 씨에게 어린이집 원장은 "딸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류 씨의 딸을 돌보기 위해 보육교사도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것.

류 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어서 대기하고 있는 아동이 수십 명이나 되다 보니 어린이집에서는 돌보기 쉬운 아이들만 받으려고 했다"면서 "어린이집에서 딸을 홀대할까봐 걱정돼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무상보육이 시행된 뒤 어린이집에 오려는 아이가 줄을 섰는데 시간 외 근무를 하면서까지 아이를 돌볼 필요가 없다"고 털어놨다.

맞벌이 가정의 아동에게는 어린이집 입소에 우선권이 있지만 거리가 가깝고 시설이 좋은 어린이집은 경쟁이 치열해 사실상 우선권의 혜택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인기 있는 어린이집은 무상보육 실시 전보다 더 일찍 정원이 마감된다. 이에 따라 일부 '직장맘'은 가깝고 시설 좋은 어린이집 대신 집에서 먼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록시키는 경우도 많다.

회사원 이선경(30'대구 북구 산격동) 씨는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 때문에 무상보육이 실시된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한테는 이로울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예산부족으로 무상보육 중단 위기

이처럼 무상보육으로 인해 부모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무상보육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잇따르자 무상보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학부모들이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회에서 무상보육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편성된 예산은 모두 1천962억으로 오는 8, 9월쯤 바닥을 드러낼 전망이다. 권모(30'대구 북구 침산동)씨는 "정부가 복지 공약을 남발하더니 결국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광역지자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국회 결정 탓에 무상보육의 시비 부담금 99억원에 대한 추경예산이 언제 편성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무상보육 수혜 바람에 편승한 학부모들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탓에 추경예산이 확보되더라도 무상보육 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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