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의 시와 함께] 사과 없어요-김이듬

입력 2012-06-14 07:41:40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아아 어쩐다, 미안하다고 하면 이대로 먹을 텐데, 단무지도 갖다 주지 않고, 아아 사과하면 괜찮다고 할 텐데,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 받기는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한 후 제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래 내가 잘못 발음했을지 몰라,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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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고도 신랄한 상상력으로 삶의 문제를 흥미롭게 파헤치는 김이듬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짜장면 집에서 겪은 일을 통해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네요.

우리는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촘촘히 짜인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유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관계일지 모르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할수록 선택의 자유는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니 '아아 어쩐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성인에 더 가까워지는지도 모릅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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