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2부> 8. 부하라에 밤이 오면

입력 2012-06-13 07:55:38

불빛 은하수 뿌린 듯 오아시스의 카멜레온

부하라 유적지의 밤. 건물을 비추는 푸른 색상의 조명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부하라 유적지의 밤. 건물을 비추는 푸른 색상의 조명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신학교의 아치형 입구가 아름다운 조명을 받고 있다. 밤에는 학생용 방들이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상가로 변한다.
'타키'라고 부르는 상가 유적지에는 여름밤을 즐기려는 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대낮 풍경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신학교의 아치형 입구가 아름다운 조명을 받고 있다. 밤에는 학생용 방들이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상가로 변한다.

오아시스의 도시 부하라에서 밤을 맞는다. 서쪽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가면 주위는 점점 어두워진다. 천년의 고도 구 시가지의 유적지 곳곳에 인공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햇살 따갑던 대낮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현란한 색상의 불빛으로 수많은 모스크와 마드라사 건물들은 저마다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내일 여정을 위해 휴식을 취하려다 밤 풍경이 궁금해 거리로 나선다. 카메라와 여권만 챙겼다. 여름날 부하라의 낮 기온은 평균 40℃를 넘는다. 강행군에 가까운 일정과 무더위에 지친 대다수 일행은 숙소에 남았다.

사막의 낮과 밤은 심한 일교차를 보여 예상대로 긴 소매를 입어도 기분 좋을 정도로 날씨는 선선하다. 이국땅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호사를 누린다. 그것도 아름다운 오아시스에서의 밤이다. 밤하늘에는 반달이 슬며시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이국땅을 여행할 때의 묘미는 모르는 세계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신발끈을 다시 졸라맨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 몇 사람도 나갈 준비를 한다. 비싼 여행비를 생각하면 저녁에도 더 많은 곳을 찾아 인증샷을 찍고 싶을 터. 그들과 헤어져 부하라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걸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사진갤러리에서 사진작가를 만나고 나와 보니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간혹 있어도 어둡기는 마찬가지. 술 취한 남자들이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라마단 기간이었다. 낮 동안에는 금식하다가 해가 저물면 먹고 마시는 무슬림 아저씨들. 더 이상 동네 깊숙이 진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유적지 쪽으로 되돌아 나왔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의 숙소가 있던 오아시스 호수 즉 '라비하우즈' 부근을 산책했다. '타키'라고 부르는 상가 유적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시원한 여름밤을 즐기고 있다. 청옥색의 타일로 벽을 장식하고 아치형으로 열린 각각의 점포들은 제각기 다른 색상의 조명을 밝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각 상가의 건물들이 대개가 300, 400년이 넘은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옛날 대상들이 고난의 여정을 마치고 낙타도 충분하게 먹이고 자신도 휴식을 취하던 바로 그 공간이다. 당시 이들이 이용했던 환전상은 아직도 그대로 영업하고 있다. '부하라의 환전상처럼 눈을 크게 뜨고'라는 비유의 말이 지금도 남아있다. 중국 서안에서부터 각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교역의 십자로 실크로드, 그중에서도 부하라는 번영을 구가해 왔다. 대중목욕탕, 보석류 장신구점, 모피 모자점 등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이 특이한 복장을 하고 거래하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림엽서와 관광도록을 파는 소년들이 일어, 불어, 영어를 구사한다.

특이하게도 약 400년 된 '디반베기 마드라사'(신학교) 건물이 밤에는 상가로 바뀐다. 기숙사의 학생용 방들은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상가로 변하고 중앙 정원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한 민속 무용이 펼쳐지기도 한다. 건물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으나 사람들은 해외 관광객들로 바뀌어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지금은 편의점, PC방도 보인다. 부하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토 맥주 '아지아'를 한 병 사서 목을 축인다. 뛰어난 맛은 아니어도 시원해서 밤 풍경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온다. 돈 메크라인의 '빈센트', 별이 많은 밤입니다…라는 가사처럼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옛날에는 다양한 색상의 조명은 없었겠지만 기름 등잔들이 비추는 불빛이 아름다운 곡선의 실루엣을 만들어 환상적인 분위기였을 것이다. 많은 여행 작가들은 혼자 있으면서 느끼는 주옥 같은 한순간을 작품으로 건져낸다. 여행에서 만나는 감동의 찰나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작품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 때 벌써 이곳 부하라에 대해 편안할 안(安)자를 넣어 안국(安國)이라 불렀다.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자신이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편안한 부하라의 밤은 이렇게 깊어 간다. 내일은 티무르왕의 고향 샤크리샵즈로 향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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