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 중에서)
그럴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진짜 쓸쓸해졌다. 표현을 수정하자.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였다. 그래도 쓸쓸함이 줄어들진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자리가 폐허로 남지는 않을 것인가?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만의 폐허를 보여준다고도 했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라는 것이 반드시 '사람'만은 아닐 게다. 시인은 뼈아픈 후회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사실 뼈아픈 후회는 남지 않는다. 그때 그 시간에는 언제나 그 시간을 살았고, 그 시간은 나에게 절실했고, 그래서 나의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고, 내가 사랑했던 자리는 남았다. 그게 폐허로 남았을지라도 폐허 그 자체가 나에게는 소중하다.
어떤 모임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한 자락. "선생님처럼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정말 위대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드러난 사람들만,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만 위대한 것은 아니에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위대하지요. 아침부터 학생들 등교 지도하시는 선생님, 아침 청소 함께하시는 담임 선생님, 수능점수 1점을 높이기 위해 애쓰시는 교과 지도 선생님, 밤늦게까지 자율학습 지도를 하시는 선생님, 다 위대해요. 사실 그분들이 그 자리를 지키시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요."
"그건 맞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을 바꾸진 못해요. 그걸 인정하는 것과 내가 선생님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범주에 속하지요."
돌아오면서 내내 쓸쓸했다. 스스로 내가 사랑했던 모든 자리가 폐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계시는 수많은 선생님들에게 죄송스러웠다. 교육청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에도 마음이 아팠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변화시킨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오만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삶의 길 자체가 모두 생채기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비록 다시 폐허만 남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자체가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함께 걷는 많은 사람들도 혹시 걸음을 멈출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우연히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를 읽었다. '맨 온 와이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동일한 필리프 프티의 보고서. 표지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할 것이다'란 말이 보였다. 자신은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필리프의 말이 부러웠다. 여전히 나는 부러운 사람이 많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었다. 어릴 때 보았던 사진 한 장에 담긴 건물을 보고 그 건물 양쪽에 줄을 묶고 걸어서 건너겠다는 꿈을 가졌던 필리프. 그리고 필리프의 그 꿈을 위해 모든 걸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꿈을 이룬 필리프보다도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친구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던 나.
그리고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질문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늘 행복하다기보다는 지금 행복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달라지는 정책에 따라 분주한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하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다시 묻는다. '나는 타인의 꿈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답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 꿈이다'라고.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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