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지구촌 모험] <25>'마야 문명'의 중심지, 멕시코

입력 2012-06-06 07:49:17

인류문명의 한축이 자리한 곳…경이로움 그리고 미스터리를 만나다

홀연히 사라진 유적도시
홀연히 사라진 유적도시 '욱스말'. 마야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타원형으로 지어진 이 피라미드의 이름은 '마법사의 집' 이다.
(1)멕시코의 밤거리, 이런저런 공연이나 분장을 한 모습으로 축제 분위기가 느껴진다. (2)멕시코의 수공예품들. 멕시코 인디언들의 용맹한 모습을 한 조각품. (3)멕시코의 첫 국경 마을인
(1)멕시코의 밤거리, 이런저런 공연이나 분장을 한 모습으로 축제 분위기가 느껴진다. (2)멕시코의 수공예품들. 멕시코 인디언들의 용맹한 모습을 한 조각품. (3)멕시코의 첫 국경 마을인 '치아파스 어꼬신고'의 한 초등학교 학예회 모습.

'태양의 대륙' 라틴의 정열이 살아 숨쉬는 곳. 기원전 2000년 미스터리의 문명 '마야'의 중심지였던 땅이 바로 멕시코다. 유카탄 반도를 따라 거대한 신전과 현재도 해석이 불가능한 건축술과 천문학을 자랑하던 '마야'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미지(未知)의 문명이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며 인류 문명의 한 기원으로서 1천 년 전까지만 해도 면면히 존재했던 마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스페인 등 외부세력의 무지한 학살이 그 원인이라는 설과 마야 내의 무분별한 개간이 '흑사병'에 맞먹는 병충해를 불러 급작스럽게 소멸되었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심지어 미확인 비행물체(UFO)에 의해 우주인에 끌려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추측도 있다.

◆유적도시 '욱스말'

유카탄 반도의 끝, 마야문명의 출발지 메리다를 거쳐 내륙 밀림으로 들어서면 유적도시 '욱스말'이 나타난다. '욱스말'은 마야 언어로 '풍성한 추수'라는 뜻이다. 서기 600년쯤 동서 600m, 남북 1㎞에 걸쳐 조성됐으며, 한때 주민이 5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큰 도시였다. 도시 내부엔 이례적으로 타원형으로 돌축을 쌓은 마법사 신전과 지평선 위로 금성이 내려앉은 지점을 정확히 직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총독 궁전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렇듯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욱스말'은 뭔가 알지 못할 이유로 300년 만에 홀연히 사라졌다. 돌무더기와 울창한 정글만 남긴 채 종언을 고했다. 유엔은 '욱스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생겨난 마야문명은 중앙아메리카에까지 걸친 거대 문명이었다. 중미에 널리 퍼진 원주민들이 멕시코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된다. 멕시코가 '라틴의 진수'라 불리며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도는 멕시코시티, 인구는 1억400만 명이다.

◆첫 국경 마을 '치아파스 어꼬신고'

마이크 소음에 마을은 초입부터 시끌벅적했다. 이 소리들을 따라 들어가니 한 초등학교에 다다랐다. 맨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학예회가 열리고 있었다. 1년에 2번, 학기가 끝날 때면 열린다고 한다. 워낙 빈곤하다 보니 학예회가 곧 마을 축제였다. 이날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생활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이 물씬 풍겼다. 달리기, 릴레이, 오자미 던지기 등 온 가족이 한껏 신났던 우리네 1970, 80년대 그 시절 가을 운동회를 연상케 했다.

'치아파스 어꼬신고'를 벗어나면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태평양을 따라 신이 멕시코에 내린 선물인 천혜의 해변들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아카풀코'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휴양을 위해 찾아든다.

◆캄페체주의 '칸쿤'

최근엔 캄페체주(州)가 유명하다. 과거 스페인 요새가 있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과 풍부한 바다자원 때문에 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특히 '칸쿤'이란 도시는 해변의 모래가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행운의 모래'라는 소문이 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40여 년 전 '칸쿤'은 주민이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어촌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멕시코 정부가 공사를 시작해 새로운 휴양지로 조성하면서, 그 덕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방문객 수도 급증하면서 지금은 최고의 리조트 해변으로 변모했다.

의문이 하나 생겼다. 왜 마야는 뜨거운 태양과 따뜻한 해수(海水)가 있는 해변을 놔두고 사람이 살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밀림 한가운데에 도시를 만들었을까? 작물을 기르기 어렵고 우기(雨期)면 몇 달간 끊임없이 비가 내리며 웅덩이의 벌레들이 수없이 많은 전염병을 퍼뜨리는데다 맹수와 독충마저 우글거리는 위험천만한 정글에다 삶의 터전을 만든 것일까?

◆석회암 지대의 유적지 '치첸이트사'

밀림 속 '욱스말'의 마야문명이 사라질 무렵 유카탄 반도의 중앙 석회암지대엔 새로운 유적지 '치첸이트사'가 세워졌다. 약 8천만㎡(2천400만 평) 면적에 종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대표적인 유적은 높이 25m의 매머드급 피라미드인 '카스티요 신전'. 건축 연대를 추정해보면 서기 900년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천100년 전, 돌을 쌓아 그렇게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게 기이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공전주기에 맞추어 전체 계단의 숫자를 365개로 한 것이 다시금 생각해도 놀랍다. 당시 천문학이 현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마야의 그러한 미스터리는 이제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치첸이트사'는 이전의 마야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새겼다. 해마다 한 사람씩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의 해골을 판에 찍어 유적 벽면에 붙인 것이다.

◆마야 문명의 멸망 원인은?

'욱스말'과 '치첸이트사'로 이어지던 마야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페인 등 멕시코 외부세력의 침입을 꼽는 학자들이 주류다. 도시를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인구가 늘자 척박한 땅마저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병충해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약화돼 근세 유럽의 흑사병처럼 대규모로 병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마야의 멸망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무엇도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야의 거대한 유적과 유물이 그대로 남았음에도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