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진방남(하)

입력 2012-05-31 14:06:01

'불효자는 웁니다'…대중의 눈물샘 자극

1939년 경북 김천에서는 태평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신인남녀 가요콩쿠르대회가 열렸습니다. 북쪽은 함경도의 부령 청진, 동쪽은 일본의 오사카까지 각지에서 수백 명의 청춘 남녀들이 운집한 가운데 장장 나흘 동안 열렸던 대단한 행사였나 봅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진방남은 당당히 1등으로 입상했고, 곧바로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작사가 박영호(필명 처녀림) 선생이 문예부장으로 있었던 태평레코드사에는 채규엽, 선우일선, 신카나리아, 백년설, 최남용, 백난아, 태성호, 남춘역 등의 대표가수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진방남의 합세로 태평레코드사의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작사가로는 박영호, 조경환(고려성), 김영일(불사조), 작곡가로는 전수린, 김교성, 이재호 등이 이들의 노래에 날개를 달아주었지요.

아무튼 진방남은 일본으로 가서 '불효자는 웁니다'의 취입을 앞두고 대기하던 시간에 '모친별세'란 전보를 받게 됩니다. 솟구쳐 오르는 통곡을 삼키며 몇 차례 노래를 불렀으나 목이 메여 실패하고, 결국 다음날로 연기한 끝에 울음 섞인 절창으로 녹음을 마치게 됩니다.

녹음실에서 가수는 일본으로 떠나던 아들을 배웅하러 지팡이를 짚고 마산역까지 나오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비오는 날 고쿠라 양복을 입고 우산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3등 차표를 손에 쥔 아들을 향해 연약한 손을 흔드시던 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말입니다. 가수는 녹음을 마친 뒤 마침내 터져 나오는 통곡을 걷잡을 수 없어서 온몸으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 노래의 원래 가사는 3절에서 '청산의 진흙으로 변하신 어머니여'였는데, 이를 진방남은 '이국에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로 고쳐서 취입했습니다. 하지만 2절 가사에서 모순이 발견되었지요. '드디어 이 세상을'이란 대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드디어'라고 하면 마치 어머님이 빨리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수는 취입 이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드디어' 대신에 '어이해' 혹은 '한 많은'으로 바꾸어서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1975년 조총련계 교포 추석성묘단 환영공연장에서 희극배우 김희갑이 불러 장내를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하지요.

험한 시절을 살아온 모든 한국인들에게 가요곡 '불효자는 웁니다'는 자신의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를 일깨워주는 동시에 대중들의 가슴 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수로서 약 400여 곡을 취입했고, 작사가로서는 약 5천 편가량을 발표했던 진방남(반야월)은 21세기 초반까지 마지막 원로 대중예술인으로 장엄한 생애를 살아오며 한국의 소중한 대중문화사를 생생히 증언하다가 지난 3월 26일 95세를 일기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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