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무덤'이 다른 점은 딱 하나다. 창문이다. 외부와 통할 수 창문이 없는 집이 바로 '무덤'이다. 벽에 천마(天馬)가 그려진 신라시대 무덤인 천마총에는 금관이니 장신구니 값진 보물이 많지만, 창문은 없다. 그래서 무덤일 수밖에 없다. 우리네 '삶과 죽음'도 그렇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으면,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죽음'일 수 있다.
올해 65세인 선자 할머니가 입원한 뒤 303호는 늘 반찬 냄새로 가득했다. 그녀의 식사 시간이 족히 2시간을 넘기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먹는 것이 아니었다. 큰딸이 계속 입안으로 음식물을 밀어넣었다. 다른 환자들이 참아줘서 다행이었다.
몇 주째 식사를 못하시는 위암 환자도, 연신 구역질해대는 간암 환자도 별 말씀이 없다. 그녀는 폐암이 머리로 전이된 암 환자였다. 폐에 대한 문제보다는 전이된 머리 쪽의 암이 훨씬 심각했다. 치료의 후유증으로 거의 바보가 다 됐다. 그저 눈만 껌벅이는 정도였다. 씹거나 삼키는 기본적인 기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밥을 먹다가 음식을 입에 물고 잘 때도 있었다.
30대 후반인 선자 할머니의 큰 딸은 미혼이다. 두 여동생은 결혼해서 자녀가 있었다. 간병은 당연히 큰 딸의 몫이였다. 의사 표현이 서툰 환자는 간병하는 가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큰딸은 유달리 엄마의 밥 먹는 것에 집착했다.
잘못 들어간 밥알이 흡인성 폐렴을 생기게 할 수도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동생들에게 부탁해도 "우리 언니는 못 말리는 사람입니다"하고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간호사들이 번갈아 설득하고 나는 회진갈 때마다 이야기를 했다.
목욕한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자 할머니 입안에 아침식사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목욕 봉사자들이 목욕하다말고 손가락으로 퉁퉁 불어 있는 음식물을 한 그릇 이상 긁어냈다. 위험한 일이었다. 이후 심각한 면담을 하려고 진료실에 큰딸을 불렀다. 그렇지만 그녀는 상담 도중에 "나는 우리 엄마 밥 먹여야 하거든요!"하고 나가버렸다.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소통을 할 수 없으면 그것은 살고 있지만 죽은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제 영원히 떠난 부모를, 아내를, 그리고 자식을 가슴에 담아 놓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차피 우리는 육체적으로 영원히 살 수는 없으므로 마음의 창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떠나도 진실이 통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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