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권선징악'이 아니었어?…동화독법

입력 2012-05-19 07:38:24

동화독법/김민웅 지음/이봄 펴냄
동화독법/김민웅 지음/이봄 펴냄

'그 후로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의 결말은 대개 그렇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고, 역경 속에서도 착하게 산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 물거품으로 사라져야 했던 인어공주조차 왕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원한 영혼을 갖게 된다.

하지만 꼼꼼히 동화의 행간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둡고 불공평한 현실 속에 갇힌 민초들이 폭력적인 권력자들에게 날리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간 때문에 죽을 뻔한 '토끼전'을 보자. '토끼전'은 '수군절도사'에 혹했다가 저승 문 앞에 다녀온 토끼의 구사일생 생환기다. 자라와 토끼, 용왕과 토끼의 치열한 수 싸움이 재밌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조선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우선 용왕의 이름은 동해를 다스리는 광연왕(廣淵王)이다. 광연왕은 '넓은 연못을 다스리는 군주'라는 의미다. 다른 용왕들과 달리 광연왕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중환자다. 동쪽 나라는 조선이라는 뜻이고, 조선이 깊은 병에 걸려 있다는 의미도 된다. '토끼전'은 용을 상징으로 삼는 당대 최고 권력자를 처음부터 조롱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뜯어보면 용왕의 행태가 가관이다. 병을 얻은 이유는 여자와 술 때문이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3천 궁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속절없이 황천객이 될 신세'라고 한탄한다. 용왕은 '닭처럼 울고 개처럼 도적질하는 자'라도 버리지 않는다. 당시 조선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시선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용궁에서 높은 벼슬자리를 준다니 냉큼 따라나서는 토끼는 먹물이 든 위선자의 풍자다.

'동화독법'은 동화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권선징악'이라는 교훈 속에는 당시 현실과 권력자들을 향해 날리는 민초들의 분노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토끼전'과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 '헨젤과 그레텔' '바보 이반' 등 동서양의 동화와 우화 10편을 새롭게 해석해 보통 사람들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통찰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기근에 시달렸던 시대의 비극을 뚫고 살아난 존재의 내면세계를 꿰뚫어본다. 기근이 들었다고 자식을 내다버리는 부모의 모습은 억압에 무기력했던 부모 세력을 상징한다. 마녀가 타죽은 화로의 불은 역사에서 혁명의 불길을 말한다. 마녀는 탐욕스러운 권력자의 횡포와 폭력이다. 부모 세대는 현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이들을 버렸지만 헨젤과 그레텔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솝우화인 '개미와 베짱이'는 '일하는 자들의 권리'를 말한다. 고대시대 노동의 결과물을 빼앗기는 노예들과 신분 덕택에 놀며 지내는 귀족들이 풍족한 모순에 대한 반격이다. 현재에 비교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개미에게 최고 가치는 '중단 없는 노동'이다. 휴식의 가치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현대인들과 묘하게 들어맞는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는 공포를 통해 기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권력자들에 대한 조롱과 경고다. 마을 사람들도 책임이 있다. 마을 공동체는 양치기가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갔다. 위험에 대한 경보장치가 고장 났다면 양들의 안전을 위해 양치기를 교체하거나 대안을 세웠어야 했다. 저자는 "예전부터 배워왔던 이야기의 교훈은 고정관념의 틀 속에 묶여 있고, 우리의 뇌를 마비시켜 왔다"며 "동화에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현실풍자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448쪽. 2만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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