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중 FTA는 왜 침묵하나

입력 2012-05-16 11:13:31

2011년 11월 22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통과를 시도하던 국회 본회의장.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현 통합진보당, 19대에도 당선)이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나더니 의장석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든 그는 주저 없이 뚜껑을 열었고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최루탄이 터진 것이다. 그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 국회를 뉴스거리로 만든 '최루탄 국회'의 주인공이 됐다.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할 한'미 FTA 협정문을 처리하면서 국회의원들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루탄을 터뜨렸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요즘 만신창이 정당으로 전락한 민노당의 변신인 통합진보당 내분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경선 부정을 둘러싼 통진당 사태를 논하는 것은 솔직히 지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겹다. 그들의 후안무치를 보는 것은 공안 통치가 강하던 시절 강요당하면서 배웠던 공산당의 실체를 정말로 보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다. 그때 '공산당은 인민 위에 군림한다'고 배워 설마했는데, 이번에 보니 통진당 당권파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럼 왜 떠올리기 싫은 그 장면을 지면에 등장시켰는가. 그들이 서민을 위해 그토록 저지하려 했던 한'미 FTA보다 더 농민과 서민을 죽일 수 있는 '한'중 FTA'가 양국 간 공식 논의를 시작했는데도 소위 진보 진영에선 제대로 된 논평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이다.

3월 15일 발효된 한'미 FTA를 비롯해 8건의 FTA에 비해 한'중 FTA는 시장 개방의 종착지라고 할 정도로 파급력이 막대하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우리 농수산업 경우 1년 전 일본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전폭발 때 일본 농업 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농수산물 교역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증가 중이다. 농산물 수입의 14%(약 40억 달러)가 중국산으로 현재는 모두 관세가 붙는다. 고관세로 수입하는 고추, 마늘 등 양념 작물 경우 가격은 국산의 10분의 1~3분의 1 수준인데 FTA로 관세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한'중 FTA 발효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대구 경북이 강점을 갖고 있는 신선 채소와 과일은 완전 쑥대밭이 돼 버린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모두 너무 조용하다. 정부야 말썽 없이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까닭에 굳이 불리한 점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치권 중에서도 여당은 속성상 역대 FTA를 찬성해왔으니 한'중 FTA만 반대할 이유가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야당은 다르다. 한'미 FTA 때 그토록 국익과 서민 경제를 외치지 않았던가.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대한민국을 웃음거리로 만든 그들은 한'중 FTA 협의를 시작한다는 뉴스에도 조용하다. 미국과의 FTA는 주권 침해라며 강력 반대하던 그들이 중국과의 FTA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조직의 지향점이 '반미'(反美)에 집중돼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농촌의 실상, 서민의 삶을 위해서'라던 구호는 역시 선전전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미 FTA 실상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서민들을 죽게 한다'며 거리로 끌어들인 그들이다. 그보다 더 큰 쓰나미를 정부가 불러들이려 하는데 침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농림수축산업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이 주생산 기반인 섬유도 존립이 흔들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중 FTA 체결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더욱이 임기가 얼마 남지도 않은 현 정권하에서 시작할 일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8건의 FTA가 발효돼 있지만 중국은 2, 3건에 불과하다. 2005년 중국과 협상을 시작한 호주는 7년째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협상을 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해야 하고 체결 시기도 가능한 한 늦춰야 한다. 민감 품목은 대상에서 제외하되 안 되면 피해 보전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협상은 상대적이고, 상대는 우리를 강제로 협상장으로 끌어낼 힘을 가진 중국이다. 이런 때는 국론을 결집시켜야 한다. 반대 목소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에 대해서와는 달리 대중국 문제에는 유독 침묵을 지키는 야당과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싸늘해지지 않도록 진보 세력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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