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좀 참아가며 살자

입력 2012-05-14 11:00:55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폭우로 목욕을 한다'는 말이 있다.

즐풍목우(櫛風沐雨 ), 갖은 고생을 견디고 참아가며 노력하고 일한다는 뜻이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필리핀보다도 못살았던 우리가 반세기 만에 이만큼 먹고살게 된 데는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에 몸을 씻듯 근면과 순명(順命)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개혁'개발 세대의 인내가 있었다.

오늘날 1천조(兆) 원이 넘는 빚더미 속에도 그나마 풍요를 누린다는 우리에게 어느새 개발 시대의 그 인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조그만 고통도 불편도 상대적 박탈감도 도무지 참을 줄을 모른다.

나의 능력,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떡이 크다고만 시비하고 남의 것은 하찮거나 거저 주운 것이며, 내 것은 소중하고 힘들여 얻은 거라 여긴다. 나는 열 개를 받아도 모자란 사람인데 저 못난 녀석은 스무 개를 챙겨 기분 나쁘다는 심사들이 계층마다 넘치다 보니 경우 없이 내 것만 더 챙기려고 거짓말, 궤변, 억지를 가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저절로 시끄럽고 난장판이 된다.

세상 모든 일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남이 이룬 만큼 나도 따라 이루려면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인내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인내의 과정에는 고통과 자기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못 기다리는 것이다. 남이 10년을 비바람 맞아가며 이룬 것을 나는 단 몇 달 만에 이루려 든다.

힘겨운 3D업종은 스리랑카나 베트남 이방인들에게 다 미뤄버리고 나는 무고통의 달콤한 열매만 따먹겠다는 심사들. 그렇게 인내를 모르고 겪어보려고도 않으니 정신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다. 조그만 고통도 못 견뎌낸다. '눈썹만 뽑아도 똥 싸겠다'는 속담처럼 사소한 어려움만 닥쳐도 어쩔 줄을 모른다. 앞서 가는 사람의 성공 뒤에 숨겨진 인내와 참아낸 고통을 생략하고 남이 이룬 열매를 손쉽게 같이 차지하려 들면 당연히 방법과 수단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둘러보자. 우리 주변에서 즐풍목우의 인내가 사라진 것들은 널려 있다. 운전 중 휴대폰 문자 쓰기가 만취 운전 때보다 사고 위험이 23배나 높고 DMB 보던 눈먼 차가 젊은 사이클 선수들의 목숨을 앗아가는데도 법 규제는 싫어한다. 운전 중 휴대폰, DMB 이용 금지를 주장한 교통 전문가는 업계로부터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았었다.

반대로 아르헨티나나 일본, 미국 같은 깨인 나라는 운전자는 물론이고 보행자까지도 휴대용 전자기기와 이어폰 이용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무인내(無忍耐)의 이기심은 DMB 시청 같은 국민들의 일상 속에만 있지 않다. 올빼미 투표, 피아노 투표로 망한 3'15 부정선거보다 더 치사한 부정선거를 치러놓고도 궤변과 거짓말, 선동의 뻔뻔함을 보이고 있는 통합진보당 같은 정치 집단의 이기(利己)는 전율이 끼칠 정도다. 당원증을 들고 투표하는 모습까지 북한을 닮고 따르는 집단은 궤변과 억지도 북한의 붕어빵이다. 공정하고 정직한 룰(rule)을 따르고서는 욕망을 얻고 채울 수 없는 자들은 편법과 부정을 사용한다.

지하에 숨어 있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원이 돼 의사당 속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정치적 경륜 수업 같은 중간 과정은 생략'무시되고 중복 투표, 대리 투표, 무더기 투표 같은 사악한 방법이 동원되게 된다.

수백억 원씩 해먹은 저축은행 경영자들의 부패도 오랜 시간 건전한 경영을 통해 알찬 금융기관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인내의 정신이 없어서다. 한꺼번에 인내의 과정을 뛰어넘고 내 배부터 채우려 드니까 터지는 것이다. 정권 말기 측근 실세들의 잇단 비리도 결국은 단 4년 만에 보통사람이 평생 이룰 걸 한방에 챙기려 한 데서 비롯됐다.

사회적 룰이 무시되고 인내가 사라지면 세상은 신호등 꺼진 길바닥과 같게 된다. 내 차 네 차 어느 차도 제 가고 싶은 쪽, 가야 할 길로 갈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신호등 꺼진 네거리에 폭주족들이 제멋대로 치달리고 있는 꼴이 돼 가고 있다. 50년 전 가난한 시절에는 있었던 인내가 왜 잘산다는 지금은 사라졌는가? 우리 모두 좀 참아가며 살자. 공동체의 인내만이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낙원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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