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부정한 사회의 비굴한 침묵

입력 2012-05-14 10:58:56

#장면 하나: 이명박정부의 핵심 실세 두 사람이 구속되었다. 한결같이 부정비리에 연루된 혐의다. 대통령께서 스스로 가장 깨끗한 정부라고 자부심을 표현한 정부의 실세들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은 이렇게 권력을 쥔 자들이 구속될 때 늘어놓는 변명이다. 친구가 또는 친지가 그냥 쓰라고 준 돈이란다. 그것도 일이십만원도 아닌 수억원을. 이들은 억억하는 돈들이 길가에 거지에게 주는 적선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사회는 그저 무덤덤하게 넘어간다.

#장면 둘: 지난해에 이어 몇 개의 저축은행이 퇴출되었다. 그것도 업계의 1위 저축은행마저 퇴출되었다니 서민들은 또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저축은행의 주인(오너)이라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조폭들이 오히려 주눅이 들 정도다. 고객의 돈은 내 돈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지하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던 자들에게 일종의 사면권을 행사했던 결과물이 오늘의 저축은행이다. 언젠가 누구의 로비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을까? 여기에도 썩은 돈 냄새가 폴폴 나는데 정치인도 관료도 오불관언 그저 국민의 세금으로 땜질하고 사후 약방문은 형식에 그친다. 이렇게 부패한 저축은행의 주인들이 제 배만 불렸을까? 아니면 또 은밀하게 권력을 가진 정치인, 관료 등등에게 줄을 대며 공생하지는 않았을까? 서민들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다.

#장면 셋: 대한민국의 대표 재벌가들에서 상속재산다툼이 눈꼴을 시게 만든다. 예로부터 돈은 부자관계도 몰라본다고 했는데 오죽하랴. 그런데 그들이 다투는 돈이 불법적인 상속재산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상속세를 회피하려 차명으로 은폐했고 시일이 지나 이것을 실명화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금의 진흙탕 싸움만 즐긴다(?). 이 사회에 만연한 돈 가진자들의 불법적인 상속행태를 어떻게 바로 잡을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상속세를 없애려는 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불법을 아예 근원에서 제거하려는 의도에 다름아니다.

#장면 넷: 어느 사학에서 교사를 돈 받고 뽑았다는 혐의로 교장선상님 댁을 수색했더니 돈다발이 십수억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부가 최근에 발표한 감사결과에서 어느 사립대학 이사장은 학교 공금을 수십억 횡령하여 사욕을 채우는데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디 이들 한 두 곳 뿐이랴. 그런데도 과거에 부정을 저질러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던 수많은 학교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 대부분 도로 그 부정을 저질렀던 구 재단들에게 돌아갔다. 지금도 몇몇 사학들에서 정상화를 논의하며 여전히 구 재단에게 돌려줄 명분만 찾고 있다. 이에 항의하면 자본주의 사유재산 논리를 들이대며 반박한다. 학교가 지식을 판매하는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장면 다섯: 대중의 어리석음을 구제해야 할 스님들이 호텔방에서 술과 담배와 함께 도박을 즐겼다는 소식이 가슴을 에리게 한다.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얼굴로 어떤 마음자세로 불당에 앉아 큰절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그런데 성직자의 일탈이 비단 불교뿐이 아니지 않는가. 성직자들의 행태가 일반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랴.

이들 장면이 선진사회를 외치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것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자고 하면 '그래도'를 외치며 저항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부정부패 불감증에 빠져있다. 필자라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부정부패에 비굴하게 침묵하는 사회에서 무슨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정직을 가르치고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해도 좌파로 매도하고, 안전한 작업장에서 최소한의 처우를 받으며 일하게 해달라는 비정규직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사회가 어떻게 부정부패에 이리도 관대할 수 있는가? 진보인사의 조그만 일탈은 눈꼴시게 바라보는 보수언론들이 정관언재유착구조에서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에 관대한 현실을 보면서 일반서민들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수많은 대학생들이 대출받은 등록금 때문에 미래를 빼앗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수백억을 꿀꺽해도 대충 집행유예를 받는 사회에서 선생은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그저 그런 선생의 슬픈 넉두리로 쓴다.

이재은 경기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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