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의 색깔있는 일본이야기] 일본의 어린이날

입력 2012-05-12 08:00:00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5월 5일은 어린이날로 공휴일이다. 4월 말부터 이날까지 약 일주일간은 공휴일이 많아 골든 위크(황금연휴)라 불리며 국민 휴식 기간이다. 한 해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가벼운 이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는 등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이 시기에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동네 한가운데 높은 장대에 매달려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헝겊으로 만든 잉어를 볼 수 있다. '고이노보리'라고 한다. 중국 황하강을 거슬러 올라간 잉어가 상류의 용문(龍門)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고기들이 용이 된다고 하는 등용문(登龍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남자아이의 입신양명과 건강을 기원하는 전통이 되어 있다.

고이노보리는 남자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날 한 달 전쯤부터 정원이나 베란다에 장식을 한다. 이 잉어 장식을 보면 그 집에 남자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어린이날은 남자아이의 명절이다. 그리고 집안에는 16, 17세기 무렵의 전국 시대 무장(武將)의 도구를 장식해 두기도 한다. 우리 집 아이도 남자이기 때문에 생애 첫 명절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가 투구를 준비해 줬다. 하늘을 힘차게 박차 오르는 잉어와 무사의 무구를 장식하는 풍습에는 남자아이로서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여자아이의 명절은 3월 3일이며, '히나마쓰리'라고 한다. 역시 한 달 전쯤부터 여자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힌 작은 인형을 장식한다. 8세기에서 12세기에 걸친 헤이안(平安) 시대의 궁중 의복 인형이다. 딸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의 하나이다. 나도 첫 명절 때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인형을 선물받았다. 어린 시절 선명한 색깔의 화려한 인형을 보고 마음이 설레곤 했다. 그러나 남자아이의 명절과 여자아이의 명절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여자 친구들끼리 불평을 하기도 했다. 남자아이의 명절인 5월 5일은 휴일인데, 여자아이의 명절인 3월 3일은 왜 휴일이 아닐까라고 불평했다. 그리고 인형 정리가 늦으면 시집도 늦게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자아이는 살림살이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여자를 집과 가사에 얽어매려는 것으로 느꼈다.

요즘은 30년 전의 우리 세대에 비해 남녀 간의 차이가 많이 없어졌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출석부도 당연히 남자가 먼저고 여자는 나중이었다. 여자는 가정 과목을 배우고, 남자는 기술 과목을 배웠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요리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남자도 많아졌다. 열심히 연구를 해서 자기만의 요리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는 여성들뿐이었던 요리 교실에 남성들도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그들은 여성 참가자보다 오히려 더 의욕적이다. 패션 감각을 살려 앞치마도 자기 취향에 맞게 디자인과 색상을 고른다. 그들에게는 요리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멋진 것이다. 여성들도 그들의 모습을 보고 아름답게 느낀다.

아직 사회적으로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남자니까 울면 안 돼" "여자니까 정리 정돈을 잘해야 한다"는 등 주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젊은 부모들은 이러한 발언을 자제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남자구나" "여자에게는 레이스가 달린 옷이 어울린다"는 등 무의식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정부에서도 사회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없애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에 맞춰 노력하는 기업도 있으나, 공공연히 출산 휴가나 육아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는 대기업도 있다. 일본에서 남녀평등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은 개개인의 일상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전통 의식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남녀평등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미야자키 치호/일본 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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