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인생] 자신의 집 고쳐 무료도서관

입력 2012-05-10 14:01:41

독서로 꿈 키워주기, 황혼의 내가 주는 큰 선물

##고령 우곡면 76세 한시학 씨

"여기는 여러분이 쉴 수 있는 자유공간입니다. 21세기 생존전략, 독서가 국가 경쟁력입니다. 작은 도서실에 와서 책을 읽고 지식을 가져가세요."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꿈을 실은 도서관' 창문에 붙어있는 글귀다.

◆주민을 위한 열린 공간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책 읽기를 즐기지 않아요. 하지만 난 오늘도 책을 읽으러 찾아오는 그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고령 우곡면에서 무료 도서관을 운영하는 한시학(76) 씨. 지난해 자신의 집을 고쳐 '꿈을 실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큰 창문을 달아 훤히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이 일품이다. '꿈을 실은 도서관'에는 벽마다 다양한 책들이 분야별로 꽂혀있다. 초교생을 위한 동화책과 예술분야와 역사서, 세계사, 그리고 '신동아' 같은 월간지와 주간지, 명심보감 등이다.

사서교육을 받은 적 없지만, 500여 권의 책이 잘 정리정돈돼 있다. 한쪽에는 세계지도와 비디오테이프도 갖춰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쓰던 책상들을 도서관 안에 나란히 붙여 놨다.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두고 있다. 냉장고 안에는 손님용 음료수가 있다. 책을 빌려 가기도 하지만, 대출대장은 없다. 누구나 책을 보다가 빌려 가서 다 보면 되돌려주면 좋고, 돌려주지 않아도 독촉하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 학생들이라고는 1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면 소재지에 작은 도서관 하나라도 필요할 것 같아서 다양한 책들을 계속 채워 넣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3주 전 매일신문 주간매일의 '사라져가는 헌책방 골목'의 기사를 보고 대구역 지하도 헌책방을 찾아가 책 몇 권을 구매해 도서관을 채우기도 했다. "온종일 단 한 명의 방문객도 찾아오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도서관 앞길을 청소하고 음료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고 했다.

◆'책 읽는 노인정 만들기'로 시작

한 씨는 30대 초반에 우곡면 우체국장에 취임해 38년 동안 재직했다. 책과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평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별났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는 6년 전이다. 2005년 정년퇴임을 한 뒤 이듬해 (사)대한노인회 우곡면 분회장에 취임했다. 노인회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책 읽는 노인정 만들기'였다.

한 번 계획을 세우면 실천에 옮기는 성격이어서 일사천리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우곡면 기관단체와 출향인사들을 대상으로 '노인회관에 도서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처음엔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지요. 노인정에 책 읽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며 반대하는 회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출향인사들을 열심히 설득한 끝에 노인정으로 책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고령군과 우곡면의 기관'단체들도 적극 동참했다. 그 결과 노인회관에 1천여 권의 책이 쌓여 멋진 문고가 만들어졌다. 농촌지역 노인회관에 책이 쌓여있다는 사실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는 4년 임기 동안 책 읽는 노인정을 운영한 후 2010년 노인회 분회장 임기를 마쳤다.

한 씨의 유별난 책사랑은 계속됐다. 지난해 사비를 들여 자신의 집을 정비해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장한 책들과 다른 교양서적 600여 권을 채웠다. 그리고 문 앞에 작은 글씨로 '꿈을 실은 도서관'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한사코 "내가 좋아서 그냥 시작한 일인데 세상에 크게 알려지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오정래 우곡면장은 "어르신은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늘 노력하는 책 전도사이며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청년 같은 분"이라고 평가한다.

한 씨는 노인회 분회장직을 마치며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첫째, 노인회 우곡분회 현금 자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하는 전통을 지켜달라고 했다. 둘째, 노인회관에 마련된 문고의 책과 각종 비품은 고령군청과 문화원, 의회, 교육청 등 기관단체와 출향인사들의 기증품인 만큼 소중하게 보관해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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