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74)] 트로트고고를 이끈 남성보컬 (하)

입력 2012-05-10 14:07:39

안치행 사단, 트로트고고를 보편적 장르로

조용필이 데뷔앨범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록밴드 소속 보컬리스트들은 솔로 전향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신중현 사단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록스타들이 건재했고 조용필의 아성이 워낙 컸던 때문에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75년 발표된 긴급조치 9호와 같은 해 11월 터진 대마초 사건으로 스타 가수들이 대거 활동 정지를 당하게 되고 가요계는 가수 기근 현상을 겪게 된다. 실제로 당시 TV쇼 프로그램은 가수에게 배당된 시간을 채우기 힘들게 되자 연기자나 코미디언로 시간을 메우는 모습도 보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은 '히식스'와 '영사운드' 출신의 안치행이다. 1970년대를 풍미하던 기타리스트자 작곡가였던 안치행은 신중현과 달리 제작자로도 활동했는데 본향인 밴드 출신 보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히식스와 검은 나비를 거친 당대 최고의 록보컬 최헌을 '오동잎'으로 솔로 데뷔시키고 골든 그레입스 출신의 윤수일은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통해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올린다. 두 사람은 1977년과 1978년 나란히 MBC 가수왕에 오르며 안치행의 위상을 높인다.

안치행의 지휘하에 성공을 거둔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트로트고고는 당대의 보편적인 장르로 등극한다. 또 기성 작곡가들이 트로트고고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만들거나 아예 밴드 스스로 트로트고고를 만들어 보컬만 방송에 데뷔를 시키는 경우도 등장한다. 방송에서 인기를 먼저 얻고 나중에 밴드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등장한 기억할 만한 이름을 보면 템페스트 출신의 장계현과 양키스 출신의 함중아가 있고, 밴드 '메신저스'에서 재즈록을 구사하던 조경수, 최병걸 등이 있다. 애초에는 작곡가로 활동하던 장욱조가 직접 가수로 활동하는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트로트고고를 하나의 스타일로 만든 안치행은 이 전과 다른 또 하나의 행보를 만든다. 자신은 작곡만을 전담하고 프로듀서와 비즈니스는 전담을 따로 두는 방식을 채택한다. 기존의 아마추어적인 기획으로는 가요계에서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현대음반'이라는 음반사로 이어지고 윤수일, 최헌뿐만 아니라 영사운드, 김트리오 같은 밴드와 김추자, 윤복희 같은 여성 가수까지 가세한다. 심지어는 통기타 가수였던 서유석이 안치행 사단에서 '구름나그네'를 발표하기도 한다. 록이 한국대중음악계에 정착할 기회를 잃어버린 시기에 트로트와 록을 접목한 안치행의 생각은 적중했다. 찬반양론이 분분한 스타일의 음악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가치는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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