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뇌종양 앓는 아내 돌보는 전구열씨

입력 2012-05-09 09:29:12

8일 오전 경북 칠곡군의 한 요양원에서 전구열 씨가 부인 조정애 씨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있다. 조 씨는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 3년째 고된 싸움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8일 오전 경북 칠곡군의 한 요양원에서 전구열 씨가 부인 조정애 씨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있다. 조 씨는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 3년째 고된 싸움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여보, 나 왔어."

8일 오전 경북 칠곡군의 한 요양원. 남편 전구열(46) 씨가 손에 카네이션을 들고 부인 조정애(41) 씨를 찾아왔다. 불러도 대답없는 부인은 물끄러미 전 씨를 바라봤다. 부인은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관자엽 악성신생물) 3년째 투병하고 있다.

전씨는 "더 이상 치료는 필요 없으니 환자를 편하게 해주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전 부인을 요양원으로 옮겼다. 어쩌면 이번 어버이날이 부인과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카네이션을 받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뇌종양인지도 모르고…"

"애들 얼굴은 못 알아보지만 저는 알아봐요. 그게 더 가슴 아파요."

침대에 누운 부인은 남편 전 씨의 손을 놓지 않았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위해 전 씨를 데려가려 하자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남편의 손을 더 꼭 붙잡았다. 부인이 쓰러진 것은 지난 2010년 1월.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하던 전 씨는 건강한 편이었다. 평소 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부인은 종종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통이 올 때마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돼 전 씨는 퇴근길에 두통약을 사서 부인 손에 쥐여줬다.

"아내도 약을 먹으면 두통이 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부인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을 부여잡고 심하게 토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뇌종양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전 씨는 부인의 두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후회가 됐다. 조금 더 일찍 뇌종양의 존재를 알아챘더라면 아내가 이 상태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지금도 밀려온다.

전 씨는 뇌종양 제거 수술을 위해 부인을 데리고 2010년 3월 서울삼성병원으로 갔다. 문제는 수술비였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지만 각종 비급여 진료명목 때문에 병원비가 500만원 이상 나왔다. "형제들이 십시일반 모아 500만원을 마련해 주더라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 갚아야죠. 아내가 수술받고 건강해지면 형제들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가졌어요."

하지만 올해 3월 부인이 또다시 쓰러지면서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가장의 무거운 어깨

전 씨의 몸도 온전치 못하다. 뇌병변장애 5급인 전 씨는 25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신체 일부가 마비돼 지금도 걸음을 걸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몸이 쏠린다. 그래도 그는 장애를 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왔다. 아들 건호(12)와 건희(10), 부인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의 직장은 경북 칠곡군에 있는 섬유공장이다. 그곳에서 전 씨는 15년째 원단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하루 종일 기계 앞에 서서 일해야 해 한시라도 쉴 틈이 없다. 뇌병변 때문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켜 직장 동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일하면 한 달에 130만원 정도 벌어요. 아내가 건강할 때는 적은 월급으로 알뜰살뜰하게 살림도 잘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다 그립네요."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그에게 휴일은 한 달에 딱 두 번뿐이다. 그는 이달 첫째 휴일을 어버이날로 잡아 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부인이 쓰러진 뒤 집안일과 육아는 모두 전 씨 어머니(71)의 몫이 됐다. 그의 어머니도 예전에 소 여물을 먹이다가 넘어져 오른쪽 팔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아픈 며느리를 대신해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전 씨 어머니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각혈이 심해지고 숨이 거칠어져 집에서 누워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하다

부인은 지난달 28일 요양원으로 왔다. 지난달까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부인이 편안하게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조용한 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말해 쫓기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도심과 떨어져 있어 이따금 지나가는 차 소리 외에는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곳에서 부인은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 부인은 겨우 의식을 회복해 스스로 숨을 쉬고 있는 정도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밥을 먹고 혼자서 걸음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쓰러진 뒤 계속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부인은 코에 연결된 관을 통해 죽을 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전 씨는 빠듯한 월급으로 두 아이와 노모를 부양해야 하는데다 병원비 때문에 진 수백만원의 빚을 갚아야 한다. 부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 가구원 한 명이 줄어들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두 아들에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다. "어쩌면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하지만 차마 그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엄마 보러 자주 가자"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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