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월 14일 맑음.
오늘이 나의 결혼기념일로 감개가 무량하였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지금의 아내 된 사람과 평생을 같이할 가약을 맺고.(중략) 그때의 아리따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오늘의 퇴색한 아내의 모습. 많은 일 하느라고 거칠어진 손발이며 의복도 잘 못 입고 험하고 보니.(중략) 남편 된 이 마음이 미안했다. (중략) 먼 후일에 가서 언제인가 자식들에게 살림을 맡긴 뒤 지난 옛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이 할망구야 우리 부부 일생은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글쎄요. 사람의 평생이 별것 있나요. 괜찮다면 괜찮은 게지요" 하면서 서로가 웃으면서 여생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끼며 후회와 미련 없는 그것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일기를 쓰신 아버지는 2년 후 바로 이날, 당신의 결혼기념일에 돌아가셨다. 동시에 노년의 아름다운 부부에 대한 아버지의 꿈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분이었다. 오남매의 자식들과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온화한 표정 한 번 베푸신 적이 없었다. 살아계실 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돌아가신 후에는 힘겨운 가족부양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모두 떠넘기고 간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당신이 생전에 하루도 빠짐없이 써 놓았던 일기장을 통해서. 그곳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닌 또 다른 아버지가 있었다.
고생시키는 어머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수다스럽게 풀어놓는 여린 아버지. 자식들에게 잘하지 못함을 처절하게 참회하는 눈물겹도록 다정한 아버지. 장성한 자식들의 번쩍거리는 구두가 섬돌에 나란히 놓여 있는 정경을 상상하는 경쾌한 아버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오래도록 당신의 봉양을 받으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행복한 꿈을 꾸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노년이 되기도 전에, 자식들이 장성하기도 전에, 그리고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뜨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드러낸 적도 드러낼 시간도 없었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당신이 꾸었던 꿈들도 그 어느 것 하나 이루거나 보지를 못하셨다.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나이가 되었다. 돌아가신 지 30여 년 만에 이제는 똑같은 아버지이고 남편이며 동등한 40대 가장으로서 다시 만난 아버지. 아홉 식구의 가장으로서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속마음을 숨겨야만 했던 아버지가 이제야 조금씩 이해된다. 비로소 자식과 아내와 어머니에 대해 가졌던 아버지의 꿈과 똑같은 꿈을 나도 꾸기 시작한다.
이 병 동(CF감독)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