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또 다른 부모와 자식의 만남

입력 2012-05-08 10:51:06

언젠가 어느 평범한 6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전후 설명도 별로 없이 자신의 딸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찾아온 일이 있었다. 사실 간혹 자식이 원하는 진로 때문에 상담해 오는 부모님들이 계시기에 그런 줄 알았다. 처음엔 취직을 부탁하는 여느 아버지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딸의 취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자상한 아버지로만 생각했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이내 자신의 딸은 28년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프랑스로 입양됐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그의 말에서 애틋함이 배어 나왔다. 그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딸에게서 온 메일이라며 복사 용지에 프린트된 내용을 직접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해외 입양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긴 했지만 아버지로서 떨어져 있던 자식에게 못다 해 준 것에 대한 회한과 사랑이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곧 그 딸이 한국에 나올 거라며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사실 특별히 새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뿌듯하게 잘 자라준 딸자식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 주저하지 않고 알았다고 했다. 언제든지 오시라는 말과 함께.

얼마 후 그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그녀는 취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해 줄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한국의 아버지와 프랑스에서 온 딸은 생각의 차이가 꽤나 커 보였다. 그 아버지와 딸이 헤어져 있었던 28년이란 긴 시간을 회복하려면 분명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고 아직 서로에 대한 많은 이해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삶에서 잃어 버렸던 부분과 예전의 관계를 되찾고 싶어 하지만 당신의 딸이 노력해야 할 부분까지는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입양으로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인 거 같아 보였지만 지금은 그들이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기를 바라본다. 딸과의 관계에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느끼더라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린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란 사실을 생각했으리라 믿는다. 인내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휴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얼마 전 출장길에 부탁해 놓은 일 때문에 온 전화였지만 서로의 일상을 묻기가 더 바빴다. 친구의 남편도 어눌한 한국말로 안부를 전해온다. 몇 달 전 출장 때보다 한국말 실력이 꽤 는 눈치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도 그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도 역시 아홉 살의 나이에 한국의 전통적인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정 많고 희생적인 프랑스 어머니를 만났다.

우리에게 이러한 입양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에 대해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혈연만 중시하는 편견에서 나오는 거 같다.

자신의 뿌리로부터의 단절이 오히려 그 뿌리에 대한 환상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겐 언어, 문화, 잃어버린 시간의 장벽으로 인해 모국 역시 소속이 불가능하거나 쉽지 않은 장소임이 드러난다.

부모가 되어서 내 아이가 남의 품에서 다 자라도록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이타적 사랑이 극대화되는 순간이고 그래서 감동을 준다.

생각해 본다.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의 사랑과 애정에 정말 차이가 있을까? 사람마다 사연이 있고 인연이 있기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야 있겠느냐마는, 하늘이 허락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아이를 낳아준 부모에게도 길러준 부모에게도 공통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푸른 오월, 가정의 달에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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