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교육' 먼저 '자녀 교육' 절로

입력 2012-05-08 08:09:03

문제 학생의 '밥상머리 교육'은 어땠을까

어버이날이다. 부모들로선 자녀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줄 때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뿐,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하면 속이 편치 않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하는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부담에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등으로 학교 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자녀의 학습과 생활지도를 제대로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학교에 대한 불만도 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원인 중 하나로 학부모를 꼽는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얘기하는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부모의 말조차 듣지 않거나 진솔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학부모상은 어떤 것일까.

◆자녀 망치는 부모 백태…이런 학부모는 아니시죠?

"집에 있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요."

수성구 한 중학교 3학년인 A군은 요즘 아버지와 마찰이 잦다. 주된 원인은 A군의 성적. 지난해까지만 해도 A군의 성적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아버지가 '내년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려면 중3 때 선행학습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학습 진도, 공부 방법 등에 대한 지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성적이 중위권인데 고교 과정 학습을 강요당하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아버지가 갑자기 제 공부에 관심을 보여 부담스러워요. 부모님이 제 성적 때문에 다투는 일도 많아져 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며 따지고 어머니는 '그게 모두 내 탓이냐', '왜 이제 와서 잔소리냐'고 화를 내요."

학부모의 잘못된 태도가 자녀를 어긋나게 만든다. 교사와 사교육 업체,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녀 성적에 무리한 욕심을 내기도 하고 양육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경우까지 사례도 다양하다.

초'중등 입시학원 강사인 B(38) 씨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강의를 듣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수강료는 얼마든 지불할 테니 자신의 자녀를 포함, 아이들을 모아오면 국제중 진학 대비반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B씨가 더욱 놀란 것은 이 학부모가 자녀의 학습 수준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

"최소한 한 학생당 월 100만원 이상은 내겠다며 돈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에 말문이 막혔어요.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해당 학생은 성적이 학급에서 중간 정도 수준에 불과한데 어머니가 돈 얘기만 꺼내니 답답하더군요. 어머니가 그리 욕심을 부리니 아이 표정이 늘 어두울 수밖에 없죠."

초등학교 교사 C(34'여) 씨는 황당한 학부모를 한둘 겪은 게 아니다. 동료 교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이 같은 경우를 경험한 것이 자신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했다며 학부모를 찾으면 교무실로 들이닥쳐 행패부터 부리는 이들도 여럿이다.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고함부터 지르는 학부모를 대하기가 난감합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우리 아이는 그럴 리 없다'고만 목소리를 높이니 대화가 안 돼요. 부모가 이러니 아이도 충동적이죠. 평소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난폭해지는 경우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중학교 생활지도 교사 D(39) 씨는 자녀에게 무관심한 학부모들 때문에 답답하다. 학부모 교육에 자주 참여하는 이들의 자녀는 학교생활과 성적 면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 만나볼 필요가 있는 학부모는 정작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생계를 꾸리기 힘든 가정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도 크죠. 이런 경우 학부모와 어렵게 전화 통화가 되더라도 '나도 포기했으니 알아서 처리하라' '학교에서 알아서 아이를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 속이 터집니다. 부모라면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학부모가 되려면

학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자녀의 학습 도우미 역할은 기본이고 학교 운영에 참여하도록 요구받는 등 부담이 큰 것은 사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도 준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학부모가 관련 교육을 받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덕화중은 재학생의 아버지 20여 명으로 구성된 '스쿨 지킴이' 프로그램을 3년째 운영 중이다. 자녀 교육에 한 발 비껴 서 있는 아버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매월 한 차례씩 모여 학교 인근 공원과 PC방 등을 돌며 학생들의 귀가 지도를 하고 있다.

덕화중 생활지도부장인 김경원 교사는 가능하면 학부모가 자녀와 신뢰 관계를 되짚어보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만으로 자녀가 바른 인성을 갖춘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자녀와 도보여행을 해보는 등 힘든 순간을 함께 겪어보면 말문을 트기 쉬워지고 신뢰 관계도 형성될 뿐 아니라 자녀가 심리적으로 강인하게 자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범정부적으로 자녀를 챙기기 위한 연가, 휴직 등이 사회에 보편화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년째 서부Wee센터에서 근무 중인 신홍주 전문상담교사는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감정 상태를 읽을 것 ▷옳고 그름을 판단 짓기 앞서 자녀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는 등 의사소통에 노력할 것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 등을 강조한다.

신 교사는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와 함께 센터를 찾는 학부모와 상담을 해보면 학부모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정을 쏟다가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등 어머니의 감정 상태가 자주 변하면 자녀가 어머니에게 적응하는 데 혼란을 느끼게 되고 대인 관계 형성도 힘들어져 학교를 두려운 곳, 낯선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며 "이 경우 학부모도 상담치료 등으로 감정 상태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학생, 학부모 상담이 잦은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의원 원장은 학부모 교육 때 강사로 나서면 자녀의 실패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 원장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는 과잉보호형 부모는 자녀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부모들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은 인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충동 조절이 잘 안 돼 자살, 자해 등 문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녀와 더불어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함께 치료를 받아야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학교폭력 등 학교 현장의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대구시교육청도 학부모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학부모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전 학교에 학교폭력 예방과 생활습관 지도 등에 대해 알려주는 학부모 교육을 연간 15시간씩 진행하도록 했고, 22개 기관 단체와 협약을 맺고 '직장으로 찾아가는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시교육청 이호근 장학사는 "자녀가 바르게 크기 위해서는 학부모 역시 부모의 역할, 자녀와의 대화법, 학습과 생활지도 등에 대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올 하반기에는 '자녀 교육 길잡이 학부모 핸드북'을 유치원 학부모 절반과 초1, 초4, 중1, 고1 학부모 전체에 무료로 배포해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덜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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