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종교지도자에게 듣는다 ①천주교 정진석 추기경

입력 2012-05-07 10:30:04

"부모를 통해 하늘이 준 소중한 생명, 나의 것이 아니다"

대구경북에서 자살을 시도한 중고생이 4월에만 5명에 달했다. 지난 연말에도 2명의 학생이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성적 고민 문제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학생이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도 발생하는 등 자살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연령층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뜻깊은 5월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걷어내고 생명의 문화로 전환키 위해 각계 종교 지도자들의 조언을 구했다. 자살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과 그 해결 방안을 교계 지도자들의 말씀을 통해 찾아본다.

◆"성가정(聖家庭)이 가정의 모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은데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고귀한 가치는 바로 생명입니다. 요즘 인간 생명과 관련해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부작용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자기 소유로 잘못 인식한 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자살 역시 생명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점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는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했더라도 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자살의 유혹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여러 가지 사회 문제의 해법을 가정에서 찾아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생명의 기초라는 말은 사실 새삼스러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생명 존중의 문화가 싹틀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이 인간생명의 기초가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이 어떤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가정상(家庭像)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성모님, 예수님, 요셉 성인이 이뤘던 성가정(聖家庭)을 가정상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가정교육에 대한 기술은 성경에 거의 없지만 한번은 예수님이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며 3일간 귀가하지 않자 성모님은 "내가 너(예수님)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자신 있게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줄 아느냐"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들을 찾아 헤매던 성모님의 심정을 그대로 느낀다면 아이들이 학교 폭력을 당한 것을 모르고 그렇게 무심히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떳떳하다면 아이들도 그런 부모의 심정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우리 가정에서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모 자식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나'만 이해해 달라고 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왜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걸까요? 대화가 없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반항심이 생기는 겁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영향력은 무한합니다. 우선 아이가 옹알이를 할 때부터 말을 배우는데 그 말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엄마입니다. 자신의 말투를 그대로 배운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엄마들 때문에 성장한 아이들의 말투가 거칠어지는 것입니다. 말이 거칠어지면 생각도 거칠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아버지의 역할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모방하는, 녹화와 재생이 정밀한 그야말로 제대로 된 CCTV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말의 품격과 진실성은 부모에게 배웁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런 모순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거짓말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의 행동은 어떤 면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무서운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의 소유물인 양 착각하면서 막 대할 때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물질만능주의도 가정을 황폐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질은 살 만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나머지는 모두 잠시 맡겨진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주를 우리에게 주셨을 때 나누어 사용하라고 한 것이지, 특정인이 독점하라고 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만을 위해 쓰지 말고 남을 위해 자유롭게 쓰는 자세, 물질의 노예가 아닌 물질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인간상, 이런 것은 자녀들이 그대로 본받게 됩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또 '구세주의 모친, 성모님'이란 칭호는 예수님을 잘 가르치셨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인성은 육체적 부모님으로부터 전달된 것입니다. 지금도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며 "아무개 자식이지?"라며 부모의 영광을 먼저 찾습니다. 이 같은 큰 영광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돈도 명예도, 자녀 교육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삶 자체의 전달자가, 진정한 스승"

-교육 현장에서의 끔찍한 일들을 잘못된 교육제도 때문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인성교육을 등한시한 채 지식교육만 강조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감성이 메말라가고 일탈행위가 많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교육제도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너무 지식 위주의 공부만을 강조합니다. 학생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지나치게 강요할 때 아이가 삐뚤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제 관계의 바람직한 모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스승이라는 말은 아버지 다음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천주교에는 대부'대모 제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신앙 면에서의 스승입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가르칠 때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당시 교육 방식은 사제(師弟)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중세까지 이어져 온 도제제도입니다. 지금은 사제가 같이 생활하진 않지만 일정 시간 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면에서 도제와 성격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자의 상은 무엇인가요?

▷올바른 스승의 자세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삶 자체의 전달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던 것은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었습니다. 삶 자체를 전수해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말로만 교육해봤자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도록 모범 생활을 보여줘야 합니다. 스승이 부모의 마음가짐으로 제자를 대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느낀 아이들도 변할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은 자기 자녀의 연장이고, 지식의 습득자가 아닌 전인교육의 전수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담:이창영 매일신문발행인

사진:박노익사진부장 noik@msnet.co.kr

정리: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정진석 추기경, 서울대 입학 후 6·25 겪으며 사제의 길로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에 위치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6'25를 겪으며 인간이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하고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했다.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70년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 교구장,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에 임명됐으며 2006년 3월 추기경에 서임됐다.

22권에 달하는 교회법 관련 서적을 펴냈으며, 좌우명은 '옴니버스 옴니아'(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다. 불을 밝게 켜지 않으며, 이면지를 자주 사용하는 검약한 성직자로 알려졌다.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교단의 견해를 충실하게 대변해 왔다. 대주교 재임 기간에 평양 땅을 밟으려는 숙원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뒤부터 지금까지 매일 북녘을 위한 묵주 기도를 바쳐왔다고 한다.

박상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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