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모(37'말기 암환자) 선생은 아픈 중에서도 병문안 오는 친구를 일일이 주치의한테 인사시킨다. 그날도 수줍어하는 송경찬 선생을 억지로 소개시켰다. 키가 185㎝ 정도 될까? 그는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선한 인상이었다. 병동을 들어오는 모습이나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부드러운 무용 동작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도 함께 무대를 활기차게 종횡무진했던 윤 선생이 이제는 걷지 못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었다. 그래도 슬픈 감정을 잘 누르면서 그저 연신 잘 부탁한다는 말만 했다.
연골암 환자였던 윤 선생은 회진갈 때마다 "과장님한테 공연, 공연 보여줘야 하는데…"라며 줄곧 얘기했다. 병실 머리맡에 놓인 그의 공책에는 공연기획안도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그의 부인은 "건강했을 때도 공연밖에 몰랐어요. 퇴근하면 아이들과 잘 놀아주기는 했지만, 그는 늘 공연에 무슨 목숨이라도 건 사람 같았어요"라고 했다. 무용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윤 선생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한눈에 알았을 텐데. 그는 요코하마 춤 페스티벌에서 1위를 한 적도 있었다.
송 선생을 보는 순간, 갑자기 공연 생각이 났다. 처음 보는 그에게 염치불구하고 대구의료원에서 춤 공연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윤 선생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생의 마지막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2월 23일 대구의료원 대강당에서 현대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시립무용단 박현옥 감독을 비롯해 단원 29명이 한 가족을 위해 공연을 했다. 윤 선생이 초연했던 '모순과 거짓말'이라는 작품. 외계인이 지구로 왔는데 인간 세상을 보니 너무 많은 모순들이 가득했고, 그 외계인들도 나중에는 서로 배신하게 된다는 등 이러쿵저러쿵 재미난 작품이다.
초연 때 외계인 대장 역할을 윤 선생이 했었고, 당시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머리로 전이된 암 때문에 말이 어둔한 윤 선생을 대신해 부인이 "단원 여러분, 고맙습니다"로 시작하는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참가자 모두 울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까?" 그렇게 무용밖에 몰랐던 그는 무슨 미련이 남아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병이 악화된 상태에서 그토록 공연을 보고 싶어 했을까? 윤 선생은 '공연과 가족'이 바로 그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즐기고 싶었다. 살아온 방식대로 마지막까지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의 병동에서 깨달은 사실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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