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석당 조세우와 칠곡 동명 구덕리의 느티나무

입력 2012-05-03 14:01:29

지금도 잎은 피지만 한 가지만 살아 안타까워

15세기 팔거현에는 도(都), 현(玄), 임(任), 전(田), 변(卞), 배(裴), 임(林) 씨 등이 주류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지리지(地理誌)의 이런 기록을 볼 때 창녕 조씨들이 비록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팔거지역 향촌사회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들에 비해 좀 늦게 터를 잡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입향은 성주목사 조세우(曺世虞, 1483~?)로부터 비롯되었다. 공은 아호가 석당(石塘)으로 창녕 고암에서 부사를 지낸 아버지 상겸(尙謙)과 어머니 문화 류씨 사이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개(氣槪)가 높고 도량이 넓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여 주위 사람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1513년(중종 8) 진사시에 합격했다. 이때 이언적, 태두남, 송희규 등이 함께 합격하고 이어 급제해 정언(正言)이 되었다. 성균관 생원이던 시절 간신 김안로의 권세에 눌려 아무도 그의 잘못을 따지려 하지 않을 때 공이 앞장섰다. 1537년(중종 32) 10월 29일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세우(曹世虞) 등이 상소하기를, "신하로서 저지를 수 없는 흉악한 죄를 지은 세 사람은 간사(奸邪)의 율로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그 모의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난적(亂賊)의 기미가 이미 드러났으니 올바른 형벌을 밝게 보여서 처자(妻子)까지 죽여 용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김안로는 단지 사사에 그쳐 이미 왕자가 역적을 주륙하는 뜻을 잃었습니다. 더구나 허항(許沆)과 채무택(김안로와 더불어 정유삼흉(三凶)으로 불림)은 죄가 김안로와 같은데도 아직까지 목숨을 보존하고 있으니, 어찌하여 전하께서 부도한 죄인을 용서하시어 구차하게 왕법을 이처럼 굽히신단 말입니까? 임금이 법을 쓰는 데는 반드시 인심에 따르셔야 하는데 일국의 신민이 모두 죽여야 옳다고 하는데도 유독 전하께서만 미안하게 여기시니 신들은 못내 의혹됩니다. 죄가 혹 의심스러우면 가벼운 법을 써도 됩니다. 그러나 난적을 죽여서 여러 사람의 분함을 푸는데, 무슨 미안할 것이 있겠습니까."(이하 생략)

공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상소문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구도호부사를 지낸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는 '얻어서도 자만하지 않았고, 잃어서도 슬퍼하지 않았다. 엄자릉의 의지와 취향을 이었고, 주렴계의 기상을 볼 수 있으나 재주와 학문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 세상과 등지고 살아도 마음으로 슬퍼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회재(晦齋) 등 당대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성주목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민들의 생활안정책을 건의했으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자 '내 의견이 채택되지 아니하는 상황에서 무슨 방법으로 주민을 돌볼 수 있으랴' 하면서 사직하고 1540년경 창녕에서 이곳 팔거(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정착했다.

공은 터를 잡은 곳에 한 그루 느티나무를 심었으니 지금도 잎을 피우고 석당파호족신수(石塘派護族神樹)로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세력이 너무 약해 큰 줄기는 썩고 한 가지만 살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후 공의 후손이 번창하여 증손 계안(繼顔)이 문과에 급제해 공조참의에 이르고, 석현(錫玄)이 동몽교관, 백승(栢承)이 여러 군의 수령을 거쳐 공조참의, 화승(華承)이 북부도사(北部都事)에 이르렀고, 윤문(胤文)은 문장과 덕행이 높았으며, 후학을 위해 도산재를 창건하고, 정이는 경서와 사서에 밝았고 극승(克承)은 연암재를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이상은 교남지에 따른 것이다.

현재 공의 후손은 500여 호에 1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유고집으로 '석당공유적실기'(石塘公幽蹟實記)가 있다. 기업인, 법조인, 교수, 도의원, 조합장, 공무원 등 많은 인재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입향조의 음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이 심은 나무를 잘 보존하는 것은 후손들의 책무이다.

더욱 세심하게 보살펴야겠지만 태풍이나 병충해 등 만약을 대비해 지금이라도 씨를 받아 대를 잇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종자로 번식이 잘 되는 나무다. 종자를 뿌려두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공의 향사일(享祀日)이나 기타 기념이 될 만한 날을 골라 여러 후손이 모여 지금의 보호수 자리 한 귀퉁이에 심어 다음 세대에도 후손이 번창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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