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세우자] <중>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

입력 2012-05-03 11:05:29

유일한 친구는 스마트폰

친구나 부모와의 소통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사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대구시내 한 여고생이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등교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친구나 부모와의 소통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사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대구시내 한 여고생이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등교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성적 지상주의와 혼자 즐기는 문명 이기의 발달, 부모의 과잉보호와 무관심 등으로 청소년들이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고 있다. 1등주의와 자녀에 대한 몰이해가 맞물리면서 부모와의 대화가 끊기고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아이들

고교생 박모(16) 양의 유일한 친구는 '스마트폰'이다. 같은 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지도, 밥을 함께 먹지도 않는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수업시간에도 항상 스마트폰을 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군가 글을 남겼는지 확인한다. 박 양에게 친구는 보이지 않는 '온라인 친구'뿐이다.

박 양을 '혼자만의 세계'로 몰아넣은 것은 '외로움'이었다. 박 양의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약사로 안정되고 부유한 가정이지만 부모의 관심이 온통 성적이 좋은 오빠에게만 쏠리면서 부모와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실제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대화 소재는 오빠의 명문대 진학 얘기뿐이다. 주말에도 가족들은 모두 집을 비우고 박 양 혼자 집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운다. 박 양의 담임교사는 "박 양은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며 "가정에서도 박 양 혼자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교 교사들은 요즘 청소년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타인에 대한 무지'를 손꼽는다.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을 이해하는데 서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특히 부모에게 모든 걸 의지하거나 특정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자기 것을 나누는데 인색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

상담교사 이모(43'여) 씨는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실제 학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모른다"며 "단점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기적인 행태는 부모를 빼닮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녀를 안하무인격으로 만드는 데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 자녀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대신해주거나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식의 대꾸로 일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정철호 청소년정신장애 전문의는 "부모가 자녀의 성적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 자녀의 인성 발달이 늦어진다. 일등주의에 젖어 동료의식도 뒷전이다. 모두 기성세대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침묵에 휩싸인 가정

노모(47'여) 씨의 집은 저녁식사 시간에 텔레비전 소리만 울린다. 중학생과 고교생인 두 자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줄어든 대화 시간은 아이들이 크면서 아예 사라졌다. 대화를 하려 해도 고3이 된 큰아들이 대화를 거부해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다.

작은아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스마트폰만 쳐다볼 뿐이다. 노 씨는 "부모의 권위가 사라진 탓인지 아이들이 부모를 무시한다"고 속상해했다.

여성가족부의 '2011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특별'광역시의 경우 아버지와 대화 시간이 30분 미만인 청소년이 무려 50.9%나 됐다. 어머니도 대화 시간이 1시간 미만인 경우가 26.8%로 조사됐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 부모와 대화하는 횟수도 월 1~3회 미만인 경우가 67.1%에 이르렀다.

아이들도 할 말은 있다. 부모와 대화가 모두 잔소리로 들린다는 게 이유다. 고교생 이모(18) 군은 "대화를 해도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꺼리게 된다"고 했다.

고교 1학년생인 김모(17) 군은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 탓에 대화를 잃어버렸다. 김 군의 아버지는 3년 전부터 술만 마시면 늘 매를 들었다. 김 군은 "어차피 부모님하고 이야기해봤자 말이 안 통한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이 더 낫다"고 털어놨다.

경북대 장문선 교수(심리학과)는 "청소년기에는 또래 친구들끼리만 소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항상 옳고, 기성세대는 잘못됐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며 "일단 가정에서 자녀가 반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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