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1년을 돌아서 또다시 '5월 8일'이 달력에 그려진다. 우습게도 부모님에게는 늘 효도해야 하는데, 그걸 '어버이날'이라고 법적으로 명기해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모양이다.
옛날엔 몰랐다. 아니 짜증스럽게 느껴진 적도 많았다. 왜 우리 부모님들은 "너희도 아이 낳고, 부모가 되어봐라. 그때는 부모 마음을 알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교회의 주기도문처럼 다들 암송하고 계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야 '부모의 마음'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필자는 살아 계실 때의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어머니 몰래 용돈을 잘 챙겨주시던 이유만으로 최고였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가족들보다는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더 다정다감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어머니만이 가슴속에 남게 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지만 돌아가시더라도 눈물조차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결국 이런 소소한 이유들로 인해서 더더욱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고, 경상도 남자의 성격 탓에 속 한번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미움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돌아가시던 날 아침 우연히 출근길에서 마주쳤을 때, 당신에게 자식으로서 "식사는 하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라는 물음 대신에 어린 시절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용돈 5만원만 건네고 황급히 자리를 피해버린 것이다. 그날 오후 동생에게서 전화가 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정정하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다고 믿었던 아버지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계신 것이다. "이럴 거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거면… 그 아침에 뭐라고 말씀이라도 좀 하시던지… 차라리 매정한 놈이라고 욕이라도 하고 가셨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건데… 끝까지 이러고 가면 날더러 어쩌란 건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아버지가 자식 놈들 고생 덜어 주려고, 죽는 것 하나는 참 고맙게 해주셨다."
벌써 아버지가 떠나신 지 10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산소조차 제대로 찾아뵙지를 못한다. '효도'는 살아 계실 때에 하라고 했는데, 후회가 봇물처럼 온몸에 쏟아 내린다. '5월 8일'. 아들놈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주겠지. 문득 그놈에게 내가 어떤 아버지인지 궁금해진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달성문화재단 문화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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