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전당'서 주민복지공간으로 확 바꿨죠

입력 2012-04-30 07:31:03

도심 속 대중사찰로 우뚝 대명동 '무광산사'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4층 높이의 파란색 외관, 더욱이 건물 옆쪽에는 누구나 쉴 수 있도록 자그마한 분수와 벤치도 설치돼 있다. 얼핏 봤을 때 꼭 사무실 건물 같다. 하지만 여기는 '무광산사'(無光山寺'대구 남구 대명2동)라는 엄연한 사찰이다. 목조에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는 출입구를 통해 실내에 들어서면 한 차례 더 놀란다. 은은한 조명 아래 양쪽 벽으로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기 때문. 자칫 분위기 좋은 미술관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실내 입구 옆으로 쪽빛 비단의 사천왕상 그림도 눈에 띈다.

이 사찰은 지난 1월 중순 개원했다. 20여 년 동안 전국 선원을 돌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한 주지 원구 스님의 생각이 사찰 구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원구 스님은 "우리 사찰은 두 가지 콘셉트로 지어졌다. 하나는 전통사찰 양식이 아닌 미술관 형식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주 석굴암을 현대적 기법과 재료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원구 스님은 10여 년 전부터 전반적인 사찰이 현대에 뒤처져 있다고 생각해 사찰을 미래 개념형 건물로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종교적 건물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단순하면서도 비어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 것.

건물 외관뿐 아니라 실내에도 독특한 점이 여럿 있다. 1층 한쪽에는 70㎡ 규모의 '물이 흐른다'라는 카페가 마련돼 있다.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인데 주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면서 커피도 저렴하게 판매한다. 수익금은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복도 곳곳마다 미술 작품이 이어진다. 국내 유명 판화가 정해균 작품 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 작품은 정기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2층에는 30㎡의 메디컬 찜질방도 마련돼 있다. 황토 원석과 편백나무 등으로 구성된 이곳은 신자뿐 아니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문(無門)방도 독특하다. 조그마한 방이 여럿 있는데 교도소 독방처럼 점심만 주고 참선을 하도록 설계했다. 이곳 또한 신자는 물론, 일반인이 2박 3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3층에는 참사랑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지역의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학원 강사가 상주하면서 영어와 수학을 무료로 가르친다. 최대 30명가량 수용할 수 있다. 4층 대법당에는 석가모니상이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금동상이 아니고 석상이다. 원구 스님은 "석굴암 부처님을 콘셉트로 해서 신라 천 년의 미소가 아닌 현대인의 미소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석상 바로 위에는 석굴암 천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채광창이 설치돼 있다. 한쪽에는 성철 스님을 모신 단이 있다. 성철스님의 제자인 원구 스님이 성철 스님을 기리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다.

이 사찰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원구 스님은 이곳을 신자만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다. 신자가 아니어도 지역 주민들이 찾아와 쉴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복지공간으로 활용하는 미래지향적인 신개념의 사찰로 꾸며놓은 것. 이에 더해 다양한 강좌도 마련했다. '마음수행 칼리지(College)'이라는 이름으로 불교교리나 경전, 참선수행 등 신자들을 위한 강좌와 함께 서예와 다도, 사찰 음식, 꽃꽂이, 바리스타, 요가 등 다양한 문화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원구 스님은 "종교라는 것이 차별이나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사찰을 통해 사람들이 부처님과의 거리를 좁히고 편리하게 쓰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053)477-01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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